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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맥은 과연 하나의 종족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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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영찬의 「예맥의 종족성과 물질문화」(『한국고대사연구』 109, 2023)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서론>


map_023_01.jpg 예맥은 과연 하나의 종족이었을까?

기원 전후 만주와 한반도에서 성장한 여러 정치체의 대략적인 위치. 각 지역에서는 서로 다른 정치체와 물질문화가 발달하였다.


한국 민족의 기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예맥족’입니다. 흔히 예맥족은 만주와 한반도 중북부에 널리 살았던 하나의 종족이며, 여기에서 고조선·부여·고구려·옥저·동예 등이 갈라져 나왔다고 설명되어 왔습니다. 말하자면 예맥족을 한민족의 오랜 뿌리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대 기록을 시대순으로 놓고 보면 이러한 설명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생깁니다. 『사기』와 『한서』에 나오는 예맥은 하나의 분명한 종족이라기보다, 중원 사람들이 자신들의 동북쪽에 살던 여러 주민을 두루 가리킨 이름에 가까웠습니다.


이후 부여와 고구려가 성장하고 한군현이 만주와 한반도의 주민들을 지배하면서, 예와 맥은 점차 특정 정치체나 특정 지역 주민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먼저 ‘범칭’과 ‘종족명’은 서로 구분해야 합니다. 범칭은 서로 다른 여러 집단을 편의상 한데 묶어 부르는 말입니다. 반면 종족명은 일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조상이나 문화에 대한 공유의식을 지닌 특정 주민집단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초기 기록에 등장하는 예맥은 후자보다 전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의미로 사용된 예맥·예·맥을 하나로 합쳐, 아득한 옛날부터 존재한 거대한 예맥족을 상정할 수 있을까요?


<선진시대와 진·한대의 예맥>


선진시대(先秦時代,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이전의 시대)의 문헌에서 예와 맥은 처음부터 하나로 묶여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예가 언급된 사례는 매우 적고 그 위치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맥은 비교적 자주 등장하지만, 호·적·융·만과 같은 주변 집단의 명칭들과 함께 기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의 맥은 특정한 한 종족이라기보다 황하 유역의 주민들이 북방의 여러 집단을 두루 가리키던 말로 보입니다.


Si_maqian (2).jpg 예맥은 과연 하나의 종족이었을까?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의 후대 초상.


예와 맥이 ‘예맥’으로 함께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사기』부터입니다. 『사기』에서 예맥은 조선과 나란히 등장하며, 대체로 흉노나 연의 동쪽에 있던 주민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 기록만으로 예맥의 정확한 영역이나 문화를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사기』의 예맥은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주는 이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원 사람들이 자신들의 바깥에 있던 동북방 주민들에게 붙인 이름에 가깝습니다.


당시 중원에서는 주변의 여러 집단을 오환·선비·조선·예맥 등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예맥은 중원과 구분되는 동북방의 ‘타자’를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따라서 『사기』의 기록은 예맥이라는 단일 종족의 실체보다, 전한대 중원 사람들이 동북방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더 잘 보여줍니다.


『한서』에서도 예맥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한 무제가 정복하거나 군현을 설치한 동방 지역의 주민들이 예맥과 조선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중원 바깥의 여러 주민 가운데 동방에 있던 사람들을 포괄하여 부른 것입니다.


창해군에 관한 기록도 시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한서』에는 예의 우두머리인 남려가 28만 명을 이끌고 항복하여 창해군이 설치되었다고 나옵니다. 더 후대에 편찬된 『후한서』에는 남려가 위만조선의 우거왕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요동에 내속했다는 설명이 추가됩니다.


이 기록의 ‘예’를 한반도 동해안의 동예와 직접 연결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동해안의 주민들이 예로 구체적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후대의 일입니다. 후대에 형성된 인식을 앞선 시대에 그대로 적용하였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창해군의 위치는 조선과 요동의 중간, 즉 동해보다 발해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현재의 자료로 더 구체적인 위치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AA.21625051.1.jpg 예맥은 과연 하나의 종족이었을까?
고인돌·비파형 동검 분포 지도.


과거에는 요서와 요동에서 발견된 비파형동검이나 석관묘, 지석묘(고인돌), 특정한 토기 등을 예맥의 문화로 보기도 했습니다. 특정한 고고학적 문화를 곧바로 특정 종족의 흔적으로 해석한 셈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 자료를 보면 기원전 천년기 요서와 요동에는 여러 지역문화가 복잡하게 공존하였습니다. 같은 종류의 유물이 발견된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종족이 남긴 것은 아닙니다. 주민들의 이동뿐 아니라 교역과 모방, 정치적 관계를 통해서도 유사한 물건이 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문헌 속 예맥은 빨라야 기원전 2세기 무렵까지 올라갑니다. 이보다 훨씬 앞선 시기의 유물과 무덤을 후대의 예맥에 곧바로 연결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맥이 특정한 지역과 주민을 가리키기 시작한 것은 기원 이후 부여와 고구려 같은 정치체가 성장하고 한군현과의 접촉이 활발해진 뒤였습니다.


<예와 맥 : 부여와 고구려>


『사기』와 『한서』에서 동북방 주민의 범칭으로 사용되던 예맥은 시간이 지나면서 예와 맥으로 점차 구분되어 특정 정치체와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예는 부여, 맥은 고구려와 연결되었습니다.


『삼국지』에는 부여에 ‘예왕지인’, 즉 ‘예왕의 도장’이라고 새겨진 인장이 있었고, 나라 안에는 ‘예성’이라는 오래된 성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부여가 본래 예맥의 땅에서 세워진 나라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앞선 『사기』와 『한서』에서는 부여와 예맥이 서로 다른 존재로 함께 등장합니다. 이는 예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부여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중원 사람들이 동북방의 여러 주민을 예맥이라고 두루 불렀지만, 부여가 강한 정치체로 성장하면서 그 실체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예라는 이름이 부여에 특정되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왕지인’도 중원 왕조가 주변 집단의 우두머리에게 인수를 내리던 관행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구려는 기원후 왕망의 동방정책에 맞서면서 한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고, 이 무렵부터 맥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지』에는 고구려와 관련된 주민들이 대수맥과 소수맥으로 구분되어 등장합니다. 맥이 처음에는 외부에서 붙인 이름이었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고구려인들 사이에 맥이라는 자의식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부여가 예로, 고구려가 맥으로 불렸다는 이유만으로 두 집단이 하나의 예맥족에서 갈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삼국지』에는 고구려가 ‘부여의 별종’이며 언어와 여러 일이 부여와 비슷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만 ‘부여별종’은 고구려 주민 전체의 기원을 설명한다기보다 주몽 집단을 비롯하여 부여에서 이동해 온 일부 세력의 출신을 반영한 표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초기 고구려의 국가 운영에 참여한 단위정치체의 절대다수는 압록강과 혼강 일대의 토착집단 계통으로 파악되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비슷하다는 기록만으로 두 집단을 같은 종족으로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세계사에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종족 정체성을 지닌 사례가 있으며, 반대로 하나의 종족 안에서 여러 언어가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언어의 경계와 종족의 경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셈입니다. 더욱이 『삼국지』는 부여와 고구려의 언어와 여러 일이 비슷하다고 하면서도 기질과 의복에는 다른 점이 많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df64f7a173fe3cdbfaf66d51897b40ca.jpeg 예맥은 과연 하나의 종족이었을까?

3세기경 부여국의 세력권(강역) 추정도.


고고학 자료에서도 부여와 고구려의 차이가 뚜렷합니다. 부여 문화는 길림성 중부의 서단산문화에서 발전하였습니다. 부여 사람들이 주로 사용한 무덤은 땅을 파서 시신을 묻는 토광묘였습니다.


반면 고구려의 대표적인 무덤은 압록강과 혼강 일대에서 발견되는 적석총입니다. 적석총은 시신을 안치한 뒤 그 위에 돌을 쌓아 만든 무덤으로, 부여의 토광묘와 구조와 계통이 분명히 다릅니다.


고구려 지역에서 일부 부여계 유물과 무덤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이는 부여계 주민이 고구려 지역으로 이동했거나 두 지역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부여계 자료가 확인된다는 사실만으로 부여와 고구려의 전체 주민이 같은 종족이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두 나라 사이의 교류와 일정한 문화적 친연성 정도입니다. 부여와 고구려가 하나의 예맥족에서 갈라졌다거나, 고조선에서 부여와 고구려로 이어지는 단일한 계통이 존재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동예와 한예>


『삼국지』에 이르면 예 또는 예맥은 한반도 중북부의 특정 지역 주민을 가리키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반도 동해안에 자리했던 동예입니다. 『삼국지』에 따르면 동예는 남쪽으로 진한, 북쪽으로 고구려와 옥저에 접하였으며, 동쪽으로는 바다에 닿아 있었습니다.


고조선 멸망 이후 한군현의 지배체제가 정비되면서 단단대령 서쪽은 낙랑군에 속하였고, 산줄기 동쪽의 일곱 현은 낙랑군 동부도위의 관할을 받았습니다. 이 일곱 현을 흔히 ‘영동 7현’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영동은 오늘날의 행정구역인 강원도 영동만을 뜻한다기보다, 산줄기 동쪽의 한반도 중북부 동해안 지역을 가리킵니다. 『삼국지』는 영동 7현의 주민을 모두 예(濊)로 삼았다고 기록합니다.


이후 동부도위가 폐지되자 현지의 유력한 수장들은 후(侯)로 봉해졌습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불내예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images (33).jpg 예맥은 과연 하나의 종족이었을까?

‘부조예군(夫租濊君)’ 인장

여기에 평양 정백동 1호분에서 발견된 ‘부조예군(夫租濊君)’ 인장도 주목할 만합니다. ‘부조예군’이라는 명칭은 부조 지역의 우두머리가 예의 군장으로 불렸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기록과 유물을 종합하면 한군현의 지배 과정에서 한반도 중북부 동해안의 재지 주민들이 예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기』와 『한서』에서 동북방 주민을 폭넓게 가리키던 예맥은 『삼국지』에 이르러 한반도 중북부 동해안의 주민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낙랑군의 한인들이 이 지역 주민을 예로 부르기 시작했고, 그 명칭이 장기간의 접촉과 지배 속에서 고착된 것으로 보입니다. 동예를 선진시대부터 이어진 광역 예맥족의 일부로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삼국지』에는 한과 예를 함께 부른 ‘한예’라는 표현도 등장합니다. 이때 예는 낙랑군과 대방군의 지배 범위 안에 들어온 한반도의 토착 주민들을 가리킨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한과 왜는 기본적으로 군현 지배 바깥의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3104168_3123662_246.jpg 예맥은 과연 하나의 종족이었을까?
광개토대왕릉비. 


「광개토대왕릉비」에도 한예가 등장합니다. 중국 측 사서가 아니라 고구려인이 직접 세운 비석에 이러한 표현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비문에는 수묘인을 어디에서 데려왔는지 구분하기 위해 일부 지명에 한 또는 예라는 이름을 붙인 사례가 확인됩니다. 5세기 초 고구려도 임진강과 한강 중상류의 영서지역 주민 일부를 예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선진시대부터 같은 정체성을 유지한 예족이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한군현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예로 불렸습니다. 외부에서 붙인 명칭이 장기간 사용되면서 굳어졌고, 고구려의 지배를 받은 뒤에도 그대로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문헌에서 같은 예로 불렸다고 해서 이들이 동일한 문화를 가졌던 것도 아닙니다. 경기 북부와 강원 영서지역에서는 특정한 형태의 주거지와 토기, 돌무덤이 나타납니다. 이를 하나로 묶어 예계 집단의 문화라고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영동과 영서의 물질문화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강·남한강 중하류와 한강 하류에서 나타나는 육각형 주거지는 영동지역에서 확인되지 않습니다. 강원 영서와 임진강·남한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적석총도 영동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영동과 영서를 하나의 예족 문화권으로 묶을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동예 북쪽의 옥저에서도 동예와 구분되는 문화가 나타납니다. 옥저 지역에서는 두만강과 연해주 일대의 단결-끄로노프카 문화가 발전하였습니다. 반면 동예 지역에서는 그러한 문화가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으며, 세형동검을 비롯한 청동기와 강릉 안인리 등의 주거지가 나타납니다. 따라서 현재의 고고학 자료만으로 옥저와 동예의 관계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기원 전후 만주와 한반도 중북부의 여러 물질문화를 하나의 예맥 문화로 묶기는 어렵습니다.


길림·장춘 일대에는 토광묘를 사용한 부여 문화가 있었고, 혼강·압록강 일대에는 적석총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문화가 있었습니다. 두만강과 연해주 일대에는 옥저의 단결-끄로노프카 문화가 있었으며, 한반도 중부의 영동과 영서지역도 서로 다른 문화적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들 지역 사이에는 교류와 상호 영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과 하나의 종족이었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합니다. 여러 주민이 문헌에서 같은 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을 하나의 광역 집단으로 묶거나, 하나의 예맥족이 여러 지역집단으로 갈라진 결과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결론>


예맥을 한민족의 근간이 되는 광역의 단일 종족으로 보는 관점은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병도는 1948년 『조선사대관』에서 조선민족의 근간으로 예맥족을 제시하였습니다. 이후 예맥족에서 고조선·부여·삼한·삼국이 갈라져 나왔다는 설명이 한국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학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한 예맥의 범위는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까지 『사기』·『한서』·『후한서』·『삼국지』와 「광개토대왕릉비」에 나타난 서로 다른 용례를 시공간적으로 합쳐 놓은 결과에 가깝습니다. 이 긴 시간 동안 예맥·예·맥이 가리키는 대상과 의미는 계속 달라졌습니다.


초기의 예맥은 중원에서 동북방의 여러 주민을 가리킨 범칭이었습니다. 이후 부여와 고구려가 성장하면서 예와 맥은 각각 두 정치체와 연결되었습니다. 한군현이 만주와 한반도의 주민들을 접촉하고 지배하는 과정에서는 동해안과 한반도 중부의 일부 주민도 예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고고학 자료에서도 만주와 한반도 중북부를 하나로 묶는 단일한 예맥 문화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부여의 토광묘, 고구려의 적석총, 옥저의 단결-끄로노프카 문화, 영동과 영서의 서로 다른 문화는 당시 여러 지역집단이 각기 다른 전통을 지녔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만주와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장기간의 민족 형성은 하나의 예맥족이 여러 갈래로 나뉜 과정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하나였던 집단이 갈라졌다기보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여러 지역집단이 장기간의 교류와 통합을 거쳐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 과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물론 지역집단 사이에 문화적 공통성이 없었다거나 후대의 민족적 정체성마저 부정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현재의 민족적 동질성을 상고시대에 그대로 투사하여, 당시의 여러 주민집단이 처음부터 하나의 혈연적·문화적 공동체였다고 전제해서는 안 됩니다.


아득한 상고시기부터 광역의 단일 종족인 예맥에서 갈려져 나온 하나의 민족이라는 믿음은 근대 국민국가의 단일민족 신화에서 투사된 허상일 뿐입니다.


예맥은 아득한 상고시대부터 고정된 정체성을 유지한 단일 종족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대상과 의미가 달라진 역사적 명칭이었습니다. 한민족의 형성도 하나의 조상 집단에서 여러 갈래가 뻗어 나온 과정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지역집단들이 오랫동안 접촉하고 통합되어 간 과정으로 보는 편이 문헌과 고고학 자료에 잘 들어맞습니다.


요약


『사기』와 『한서』의 예맥은 하나의 분명한 종족이라기보다, 중원 사람들이 동북방의 여러 주민을 두루 가리킨 이름에 가까웠습니다.


이후 정치체의 성장과 한군현의 접촉 속에서 예는 부여, 맥은 고구려와 연결되고 동해안과 한반도 중부의 일부 주민도 예로 불렸습니다.


부여·고구려·옥저·동예 등은 서로 교류하였지만, 무덤과 주거지 등에서는 각기 다른 지역적 문화가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아득한 옛날부터 존재한 하나의 예맥족에서 갈라져 나온 집단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한민족은 단일한 예맥족이 분화한 결과가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집단들이 오랫동안 접촉하고 통합되면서 형성되었다고 이해하는 편이 타당합니다.


<참고문헌>


동북아역사재단 편, 『고조선·단군·부여』, 동북아역사재단, 2007.

오영찬, 「예맥의 종족성과 물질문화」, 『한국고대사연구』 109, 2023, 89∼122쪽.


<이미지 출처>


http://rubens.anu.edu.au/raid2/no_dgb/the_lot/the_lot.html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0013115001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ta/view.do?levelId=ta_m71_0020_0020_0030_0020

https://blog.naver.com/superman2208/220244459270

https://www.handmk.com/news/articleView.html?idxno=1213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i_maqian.jpg


HDGugewboAAbJ_N.jpg 예맥은 과연 하나의 종족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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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XXX스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 모XXXX카감사합니다
  • 나XXX라역시 큐어 아르카나야
  • 리XXXX임예맥한이 하나라고 했지 않나같은 족속이라고근데 또 다른 갑네
  • 모XXXX카말씀하신 것처럼 이른바 ‘예맥한’이 서로 가까운 계통이거나 문화적 공통점을 지녔다고 보는 견해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다만 이 글과 원 논문에서 문제 삼는 것은 그러한 공통성 자체가 아니라, 이들을 처음부터 하나의 고정된 종족으로 보아도 되느냐는 점입니다.
  • 모XXXX카고대 기록을 시대순으로 보면 ‘예맥’, ‘예’, ‘맥’, ‘한예’가 가리키는 대상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초기의 예맥은 중원 사람들이 동북방의 여러 주민을 폭넓게 부른 명칭에 가까웠고, 이후에는 예가 부여나 동해안 주민과 연결되고 맥은 고구려와 연결되는 등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한예’ 역시 하나의 혈연집단 이름이라기보다 한군현과 고구려의 지배 과정에서 특정 지역 주민을 구분한 표현으로 나타납니다. 같은 이름으로 묶였다는 사실만으로 이들이 하나의 종족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이유입니다.
  • 모XXXX카고고학 자료에서도 부여의 토광묘, 고구려의 적석총, 옥저의 단결-끄로노프카 문화처럼 지역마다 서로 다른 전통이 확인됩니다. 물론 이들 사이에 교류나 문화적 친연성이 없었다는 뜻은 당연히 아닙니다. 서로 가까이 살면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것과 아득한 옛날부터 하나의 ‘예맥한족’이었다는 것은 별개의 주장이라는 것이 이 글과 원 논문의 요지입니다. 서로 가까운 계통이었다는 설명과 처음부터 하나의 종족이었다는 설명은 비슷해 보이지만, 역사적으로는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 리XXXX임즉 고대 중국 측에서 동북방 민족을 싸잡아 부르는 타자적 명칭이었고정말로 서로 문화적 공통성은 뚜렷하나 그러면서도 개별적, 독자적 차이점을 제각각 드러내고 있다는 말인가요?처음부터 뿌리가 같은 종족이었다기보단부대껴 살다보니 서로 닮아 간 부족들인 건지
  • 모XXXX카넵. 대체로 그런 의미입니다. 글의 요지를 거의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다만 이들이 처음부터 어느 정도 문화적,언어적으로 가까웠는지, 아니면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서로 닮아 갔는지는 지금 남아 있는 자료만으로 가려내기 어렵습니다.적어도 ‘예맥’이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하나의 정체성을 공유한 단일 종족을 가리킨 것은 아니었던 듯합니다. 같은 예맥 또는 예로 불린 주민들도 지역마다 서로 다른 무덤과 생활문화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동하고 교류하고, 다시 부여나 고구려 같은 정치체에 편입되면서 점차 더 큰 공동체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결국 하나의 예맥족이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친연성이 있으면서도 서로 달랐던 여러 지역집단이 오랜 시간 접촉하고 합쳐졌다고 이해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 리XXXX임그렇군요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 뿌XX와역시 진실을 비추는 ㄷㄷㄷㄷ
  • sXXXXnㅊㅊ!
  • 책XXXXXX네부여는 제후국을 거느린 제국이었다.
  • 노XXX법저 시절은 사실 산 넘어 옆 마을 사람도 우리집단으로 취급 안했을듯
  • 오X한북부여 하고 동부여는 같은 해모수와 같은 가문출신인가요?? 아니면 별개의 왕가인가요?
  • 충XXXX비강원대학교에는 예맥이라는 오래된 밴드가 있음
  • 레X르지금 보면 몽골인도 한국인과 외모가 별 차이 안나니(실제 유전적 거리는 생각보다 꽤 멀다지만)예맥한끼리는 아예 구분이 안갔을거고고대라는 특성상 거주지가 매우 가까운 상태로 4자리수 시간을 이웃으로 살았을테니처음에는 몰라도 어느 순간부터는혈통적 문화적 구분이 무의미해졌을듯.특히 고조선이라는 지역, 시대 대비 거대 국가가 생겨나기도 하고그 국가가 멸망하면서 유민이 여기저기 흩어지기도 하면서 더더욱.
  • 더X이거보고 빅맥 부기 무그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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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루데여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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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꿈뜨락편이 유독 지랄이 심한 이유가 뭐임
👤 K_Shit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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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이 악역으로 등장하는 초한지 드라마
👤 루루웨도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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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핵폭탄을 맞은 이유를 설명하는 일본인.jpg
👤 KEeep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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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교포같은 손석구 영어 모드 ㅋㅋㅋ
👤 루루웨도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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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외국인한테 뚱바 양보해준 사람
👤 KEeep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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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힙 절반 정리했다는 존박 - 맥도날드 랩 주문 ㅋㅋㅋ
👤 바루데여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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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카페 중국인 근황
👤 KEeep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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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의 대오송금 의혹
👤 루루웨도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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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정두식 대표 골인
👤 KEeep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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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구좆 쳐발리고 표정 씨발 ㅋㅋㅋㅋㅋㅋㅋ
👤 바루데여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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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루루웨도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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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와이프 번호를 딴 사람...jpg
👤 루루웨도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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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두형도 막지못한 안세영 또 우승.gif
👤 KEeep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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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철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는 사고
👤 KEeep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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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 억까단들아. 니네 돈 없잖아.ㅋ
👤 PPAOE 📅 2026.10.25 👀 조회 0 👍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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