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백전노장 수보로프의 마지막 불꽃 이탈리아&스위스 전역 2. 아다강 전투와 밀라노 입성
수보로프 시리즈
https://m.fmkorea.com/10220091931 림닉크 전투
https://m.fmkorea.com/10303003721 이즈마일 공성전
이탈리아 & 스위스 원정
https://www.fmkorea.com/10309183159 1편

1799년 2월 파벨 1세로 부터 러시아군 원수 복귀를 명령받은 수보로프는 유배에서 풀려나
러시아 제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향한다

파벨 1세는 수보로프에게 다시금 훈장을 내려주고 그를 이탈리아 원정군 총사령관 겸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원정군의 총 규모는 약 6만 5천명 규모였지만 실제로는 전부 보내지 못하고 약 4만명 규모였다

전설적인 노장의 합류로 비록 먼길을 떠나는 원정군이지만 러시아군의 사기는 드높았다
병사들을 아끼고 병사들과 함께하는 수보로프였기에 더더욱 병사들은 그의 복귀를 환영했다

그리고 3년전 폴란드 봉기 당시 수보로프 밑에서 활약했던 기병대장 표트르 바그라티온이 이번 원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수보로프는 30대의 이 젊은 장군을 맘에 들어했고 바그라티온 역시 수보로프를 믿고 따랐다고 한다
이렇게 수보로프 밑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바그라티온은 훗날 나폴레옹 전쟁에서 많은 활약을 한다

그리고 이번 원정에는 수보로프와 사이가 아주 좋았던 코삭기병대들도 같이 했다 오스만 제국과 전쟁 당시
수보로프는 코삭기병들과 만날일이 자주 있었는데 유머러스하고 상남자 같은 수보로프를 코삭인들은 맘에 들어 했다고 한다
이 코삭 기병들이 이탈리아 전선에서 아주 많은 활약을 하게 된다

그렇게 수보로프를 필두로한 러시아 제국의 원정군은 오스트리아를 거쳐서 이탈리아로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약 두달간의 행군 끝에 러시아군과 수보로프는 빈에 당도한다. 빈에 입성한 수보로프는 오스트리아에 있는 러시아 대사와 함께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2세를 알현하게 된다

프란츠 2세역시 이 백전 노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알현 당시 분위기는 상당히 훈훈했다고 한다
그 후 오스트리아와 작전의 세부 계획을 논하고 전략을 가다듬었다 휴식과 논의가 끝나자 러시아군은 이탈리아 방면으로 향한다

한편 북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셰레르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 이탈리아 방면군은
1799년 마냐노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군에게 패배한다 그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수보로프가 이끄는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이 이탈리아로 들어온 것이었다

북 이탈리아의 주요도시 중 하나인 밀라노를 지키기 위해 셰레르는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빠른 아다강을 중심으로 방어를 준비한다
당시 병력규모는 프랑스군이 약 22000명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이 약 48000명으로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이 더 많았다
거기에 셰레르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는데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이 아다강 어디로 건너올지 예측할수 없는 상황에
겁이 났던 것인지 안그래도 적은 병력으로 무려 100km 길이의 방어선을 형성한다

결국 프랑스에서도 셰레르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능력을 인정받은 장 빅토르 모로 장군으로 사령관을 교체한다 그는 이미 몇년전
프랑스군을 안전하게 후퇴시킨 공적으로 유명해진 인사고 나중에는 더 유명해지지만 나폴레옹의 시기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인물이다 이 당시에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처럼 떠오르는 전쟁영웅 중 하나였다

프랑스군 사령관이 셰레르에서 모로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자 수보로프는 이런 평가를 남겼다고 한다
"셰레르를 이겨서 얻는 월계관보다 모로를 이겨서 얻는 월계관이 더 값질 것이다"

새롭게 프랑스군 사령관이 된 모로는 전선을 재정비하기 시작했지만 셰레르가 펼쳐놓은 방어선은 너무 비효율적으로 길었고
아쉽게도 그에게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미 수보로프와 연합군이 아다강 앞까지 도착한 상황에서 그에게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1799년 4월 26일 바그라티온이 이끄는 러시아군이 아다강 상류에 위치한 레코라는 마을을 공격한다 여기에 있던 프랑스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서 마을을 점령하는데 성공하지만 바그라티온도 부상을 입고 프랑스군이 레코에서 퇴각하면서 하나밖에 없던
다리를 파괴하여 도하에는 실패한다 하지만 이 곳을 공격한 것은 수보로프가 프랑스군에게 마치 아다강 상류에서 도하할것처럼
보이게하는 양동공격의 일환이었다

다음날인 1799년 4월 27일 이번에는 아다강의 중류 트렌쪼 마을 근처에서 수보로프가 이끄는 본대가 강을 건너 프랑스 군을 공격한다 모로와 프랑스군이 수보로프의 공격에 맞서 싸웠지만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밀어붙이는 러시아군을 상대할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남쪽 아다강 하류방면에서는 멜라스가 이끄는 오스트리아군이 카사노를 지키는 프랑스 군을 공격한다
동시에 두방면에서 공격해오자 안그래도 수적 열세인 프랑스군은 어디에 집중해야할지 고민에 빠졌고 결국 카사노는
오스트리아군에게 뺏기고 만다

급하게 밀라노 방면에서 프랑스의 지원군이 왔지만 러시아군 우익에 위치해있던 코삭기병들에게 기습을 당해 패배한다
코삭기병대원들은 퇴각하는 지원군을 끝까지 쫓아갔고 결국 아다강에서 밀라노를 향해갈때 꼭 거쳐야하는 교통의 요지
고르곤졸라 마을을 점령한다

한편 고르곤졸라 마을이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모로는 밀라노로 돌아가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밀라노를 포기하고
다른 길로 토리노 방면으로 후퇴한다 수보로프의 이탈리아 원정 첫번째 전투는 그렇게 러시아-오스트리아 군의 승리로 끝이난다

전투 결과 모로의 프랑스군은 약 20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5000명의 포로 27문의 대포를 잃었다. 반면 수보로프의 연합군은
1500여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그렇게 아다강의 전투가 끝난 2일 뒤인 1799년 4월 29일 수보로프는 밀라노에 남아있었던 프랑스군 수비대를 제압하고
유서깊은 이탈리아의 도시 밀라노에 입성한다

여담
중간에 고르곤졸라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자료조사하다가 익숙한 이름이라서 설마 했더만 실제로 이 마을서 만들어진 치즈라
고르곤졸라 치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맛있게 고르곤졸라 피자를 먹는 코삭기병을 묘사해봤어요 힘든 전투로 인해 많이들 피곤한 모습이네요
🔥 실시간 네티즌 베스트 반응
- 일XXXXXX다ㅊㅊ나중에 사부아 공자 외젠도 비슷한 일대기 만들어주실수 있나요
- 마XXX루그건 더더욱 깊은 공부가 필요해서 시간이 걸릴듯 싶네요
- eXXXXjㅊㅊ
- 마XXX루감사합니다
- 디XX민오 여기에도 익숙한 이름이!인명보다 작전명으로 더 유명한 바그라티온이 등장하네요
- 마XXX루바르바로사처럼 작전명으로 더 유명한 바그라티온 ㅋㅋ
- 리XXX맇저래서 수보로프가 코삭 기병을 좋아했구만
- 마XXX루대신 이탈리아랑 프랑스 사람들은 싫어했다고 ㅋㅋㅋㅋ
- 아XXXX제개추
- 로XXXX제저렇게 프랑스군을 줘패면서 2년 전 나폴레옹이 북이탈리아에서 뺏어온 걸 리셋시키고 스위스도 다시 뺏어오려 했는데, 하필 취리히에서 이들의 길을 막은 것이 나폴레옹의 26원수 중에서도 수준급인 마세나였죠
- 마XXX루요즘은 나폴레옹 만화 안 만드시나요? ㅠㅠ
- sXXXXnㅊㅊ!
- NXXXXX절개추역시 역사엔 귀여운 이미지가 있어야 ㅋ
- 생XXXX주펨붕이들 중에 제일 많은거 고트강...
- 서X리👍👍👍👍👍👍👍👍👍👍👍👍👍👍
- 숙X이코사크 기병대가 많이 섹시하군요이런 고증에 어긋난 모습 매우 좋습니다
- 숭XXXXXX장계속 연재해주세요
- 황XXX카최근 대체 역사 소설 보고 알게 된 러시아 명장
- 농XX꿈대문호 그 소설인가?
- 황XXX카ㅇㅇ
- 킹X녀이제 다 합쳐서 게임으로 만들어지는거죠?
- 꼼X차모로입장에선 엄청 억울하겠네 ㅋㅋ 결국 역사는 결과만 남게되니.. 똥치우기 실패해서 패장이 됐네
- MXXXXXXR뭣 진영을 100km에 걸쳐서 짰다고...혹시 셰레르도 귀가 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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