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앞이 원래 차이나타운이었다고?
때는 2026년, 서울 시청 앞

관광객: "와 시청 앞 개넓다"

왕 사장: "...여기 원래 우리 동네였는데"

관광객: "??? 할아버지 누구세요"

왕 사장: "지난번 이발소 글에서 일본어 시험 때문에 털린 그 왕 사장이다 이놈아"
그렇다
오늘은 시청 앞에 진짜로 있었던 차이나타운 얘기다
<소공동 차이나타운편>

얘기는 1882년 임오군란부터 시작한다

구식 군인: "월급 몇 달째 밀렸는데 겨우 준 쌀에 모래랑 겨가 섞여 있다고!?!?!? 이 새끼들이!!!"
구식 군대가 월급을 못 받아서 폭동을 일으킨 게 임오군란이다
민씨 정권은 급해서 청나라에 SOS를 친다

청나라: "ㅇㅋ 간다"
청나라 군대가 들어와서 반란을 진압하고
흥선대원군은 아예 청나라 톈진으로 납치해 가버린다
대원군: "야 놔봐 나 조선 실세라고"
그런데 이때 청나라 군대만 온 게 아니었다

청나라 상인: "장군님 저희도 따라가도 됩니까? 군대 밥이랑 물건 대 드릴게요"
군대 물자를 대던 상인 40여 명이 같이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게 한국 화교의 시작으로 자주 꼽힌다
그리고 그 군대에 23살짜리 청년 장교가 하나 있었는데

위안스카이: "앞으로 조선은 내가 관리한다"
바로 위안스카이
나중에 중국 대총통까지 해 먹는 그 양반이다
이 사람이 조선 조정을 쥐고 흔들면서 청나라 상인들 뒤를 봐준다
같은 해 10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 맺어진다
쉽게 말하면 "청나라 상인이 한양 안에서 가게 열어도 됨" 허가증이다
청나라 상인들: "개꿀ㅋㅋ"
그렇게 청나라 상인들이 수표교 근처, 서소문 근처, 그리고 소공동 일대에 가게를 열기 시작한다
소공동 화교는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었다

1910년대부터 시청 광장 남쪽 소공동에 화교들이 모여 살았다
관광객: "차이나타운이면 개컸겠네요?"
왕 사장: "369평"
관광객: "...그게 다임? 우리 아파트 단지보다 작은데"
왕 사장: "거기에 16가구, 가게 25개가 다닥다닥 붙어 살았다 ㅋㅋ"
왕 사장: "중국집에서 짜장면 먹고, 한의원에서 침 맞고, 목욕탕 갔다가 서점 들르면 하루 코스 끝이었지"

손님: "여기 짜장면 존맛탱"
시청 바로 앞에 중국집, 한약방, 목욕탕, 서점까지 다 있는 작은 동네였다
참고로 지난 이발소 글 기억하는 펨붕이 있음?
1910년 경성 화교 이발소 6곳 중 제일 큰 용승당(종업원 13명)이 바로 소공동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왕 사장: "그 이발소 우리 동네였다니까"
정부: "자 화교 여러분, 새 법 나왔습니다^^"
정부: "1961년! 외국인은 이제 땅 못 가진다!"
왕 사장: "대대로 살던 우리 집은요?"
정부: "좆같으면 팔던가^^"
정부: "1962년! 화폐개혁!"
왕 사장: "은행 못 믿어서 현금으로 모아 둔 내 돈이..."
정부: "자 그리고 가게는 50평까지만^^"
왕 사장: "가게 50평이면 중국집 하나 겨우 들어가는데요"
정부 : "그래 그럼 중국집 하면 되겠네 ㅋㅋㅋ "

왕 사장: "아...?!?"
남은 사람들은 큰돈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중국집으로 몰렸다

정부: "수요일·토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엔 쌀 음식 팔지 마라"
1967년부터 1978년까지 '무미일'(쌀 없는 날) 정책이 있었다
이건 중국집만이 아니라 모든 음식점에 적용됐다
정부: "짜장면은 얼마 이상넘게 받지 마라"
1976년 음식점 가격 기준에서 짜장면은 350원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정부가 중국집의 밀가루 음식 값은 엄하게 묶고, 쌀 음식은 아예 못 팔게 했다"는 홍콩 신문 보도도 있다
이게 "짜장면 값 묶어서 화교 자본이 못 컸다"는 유명한 썰의 출처다
중국집 사장들은 협상안한 다른 메뉴들을 만들어 가며 버텼다. 간짜장 , 유니짜장 처럼 말이다.


1966년 10월 31일, 미국 존슨 대통령이 한국에 왔다
김포공항부터 서울시청 앞까지 환영 인파 200만 명을 동원했고, 시청 앞 광장에만 30만 명이 넘게 모였다
그런데 김포공항부터 한참을 환영, 환영, 또 환영이다 보니

미국 TV 촬영기사: "아 똑같은 환영 장면 존나 지루하네... 반대편이나 찍어 보자"

미국 TV 촬영기사: "오 시청 맞은편에 중국인 마을? 그 뒤로 판자촌이 남산 중턱까지 쫙?"
미국 TV 촬영기사: "찰칵찰칵찰칵"
그렇게 시청 맞은편 화교 마을, 남창동, 회현동, 남산 자락 판자촌까지 전 세계 안방으로 나갔다

재미교포: "아 개쪽팔려! 미국 TV에 한국 나왔는데 판자촌만 나옴! 회사 못 나가겠다!!!"
정작 한국 사람들은 이게 전 세계에 나간 줄도 몰랐다
미국 교포들이 얼굴을 못 들고 다녔고, 결국 청와대에 "시청 앞 판자촌 좀 치워 달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1967~68년에 청와대 민원비서실에 들어간 이 탄원서는 박정희 대통령한테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정부: "뭐?! 시청 앞 판자촌이 전 세계에 나갔다고!?!?!? 싹 밀어!!!"
다만 당장 밀지는 못했다. 서울은 이미 여기저기 공사판이었다
본격적으로 소공동 재개발이 시작된 건 1970년 양택식 시장 때부터다
1966년 말 서울 판자촌 인구는 약 127만 명, 시민 3명 중 1명꼴이었다
그리고 1970년 무렵, 중국인 가게가 한데 모여 있는 곳은 서울에서 소공동이었다

1971년 서울시가 조사해 보니 시청 맞은편 화교 지구엔 이런 가게들이 있었다
중국집 17곳, 한의원 1곳, 서점 1곳, 그리고 이발소 1곳
왕 사장: "그 이발소 하나, 끝까지 버틴 우리 동네 이발소다 ㅠㅠ"
땅은 23필지 369.6평, 땅 주인은 화교 14명이었다
서울시는 재개발팀을 꾸려서 이 14명을 찾아간다

서울시 공무원: "사장님~ 여기 싹 밀고 새로 지어 드릴게요^^"

왕 사장: "싫은데요.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여기 살았는데요"
왕 사장: "안 팔아요. 안 비켜요."

서울시 공무원: "아이 사장님~ 조건 들어 보세요!!!"
서울시 공무원: "하나! 시청 앞에 대형 고층 빌딩을 짓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둘! 사장님들 땅 가진 만큼 빌딩 안에 공간을 그대로 드립니다!!!"
서울시 공무원: "셋! 빌딩 이름은 무려 '화교회관'!!! 건축비 일부는 서울시가 보태 드려요^0^"
서울시 공무원: "넷! 공사하는 동안엔 서울시가 가건물 지어 드릴 테니 거기서 장사 계속하세요^0^"

왕 사장: "...오 괜찮은데?"
왕 사장: "근데 싫다고 하면요?"

서울시 공무원: "다섯! 거절하시면 보상비 드리고 강제철거입니다^^"
실제로 서울시가 내건 조건 다섯 개가 이랬다
다섯 번째가 제일 솔직하다
그렇게 공식 회의 6번, 물밑 접촉, 첫 만남부터 101일 만에

왕 사장: "도장 어디 찍으면 됨?"
1971년 8월 20일, 서울시와 화교 땅 주인 14명이 협정을 맺는다

왕 사장: "이제 우리도 18층 빌딩 주인이다 ㅋㅋㅋ"
그런데 협정문에 이런 줄이 있었다
"6층부터는 중국인 경제력 신장에 따라 점차 건립한다"

왕 사장: "...? 그러니까 18층은 우리가 돈 벌면 알아서 올리라는 거임?"

대만 : "그래?! 걱정마 서울시에 우리 화교들, 화교회관이 올라 간다고!? 감동인데 ㅠㅠ 우리도 2억 보탠다!!!"
1971년 10월 16일부터 5일 동안, 시청 맞은편 화교 가게들이 싹 철거됐다
화교들은 을지로 2가에 지은 가건물로 옮겨 가서 장사를 이어 갔다

왕 사장: "...가건물이라 그런가 손님이 하나도 안 오네"
그런데 철거만 해 놓고 공사가 한 발짝도 안 나갔다
옆 땅 한국인 지주들하고는 얘기를 안 해 놨기 때문이다

한국인 대지주: "재개발은 좋은데 왜 중국인만 따로 빌딩을 줘? 안해~ 못해~!"
결국 1972년이 되도록 아무것도 못 했다
왕 사장: "...우리 빌딩은 언제 올라감?"

서울시 공무원: "아 그거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아나요?? 언젠간 되겠죠~~ 뭐 ^^"
그리고 1972년 여름, 이상한 소문이 돈다

한국화약: "사장님들 땅, 위치 상관없이 전부 평당 107만원에 삽니다. 현금 일시불로."
한국화약(지금 한화)은 원래 바로 옆 땅의 대지주였다
평당 107만원은 서울시 조사에서 나온 최고 가격이었다. 위치가 안 좋은 땅은 32만원이었다

왕 사장: "...가건물에서 장사도 안 되고, 빌딩은 안 올라가고, 지쳤다... 팔게요"
화교 대표는 만두집 회빈루를 하던 이항련 씨였다
억울했지만 화교 14명 전원이 땅을 팔았다
화교 지구 369.6평에 옆 땅까지 합쳐 542.4평이 한국화약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약속한 1972년 10월이 됐다

왕 사장: "자 이제 10월이네. 10월까지 5층 올려 준다며!! 1층 상가 그대로 들어가면 된다며!!"
서울시 공무원: "왜 그러십니까 손님~ ㅋㅋ"
서울시 공무원: "이미 파셨잖아요??"
왕 사장: "그건 빌딩이 안 올라가니까 판 거지!!!약속대로 건물은 올려야지!!!"
서울시 공무원: "왜 팔고나서 지랄이세요"
손정목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추측했다
정부는 애초에 시청 앞 '코끝' 같은 자리에 중국풍 화교회관을 지어 줄 생각이 없었을 거라고

왕 사장: "...처음부터 통수였네"
1973년 7월, 한국화약은 일본 마루베니상사와 호텔 합작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1976년 10월 1일
그 자리에 플라자호텔이 문을 연다. 서울 도심 재개발 1호였다
관광객: "그럼 거기 18층 화교회관 대신..."
왕 사장: "호텔 들어섰다 이놈아. 우리 짜장면집 있던 자리가 호텔이 됐다고"

왕 사장: "시발 좆같은 새끼들 ㅠㅠ"

소공동에서 밀려난 화교 일부는 연희동·연남동으로 갔다
1969년 명동에 있던 한성화교중·고등학교가 연희동으로 먼저 옮겨 가 있었기 때문이다
애들 학교 근처로 모여 살다 보니 화교 마을이 생겼다
그리고 많은 사람은 아예 한국을 떠났다
왕 사장: "아 씨 좆같아서 안 살아!!!"
왕 사장: "땅도 못 갖게 해, 돈도 날려, 빌딩 준다더니 호텔 지어, 짜장면 값까지 묶어!!!"
왕 사장: "대만 간다! 미국 간다! 잘 있어라!!!"
1970~80년대에 대만·미국·호주로 많이 떠났다
"전 세계에서 화교가 뿌리내리지 못한 곳은 한국뿐"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2008년 서울시가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일대에 차이나타운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주민들은 집값 떨어진다고 뭔 좆같은 소리냐고 반대했다.
...안 생겼다 ㅋㅋ
그래서 지금 서울에서 화교 흔적을 보려면
연희동·연남동 오래된 중국집을 찾아가는 게 제일 빠르다
3줄 요약
1. 188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 따라 들어온 상인들이 한국 화교의 시작
2. 1910년대부터 시청 앞 소공동에 차이나타운이 있었는데, 1961년 땅 규제·1962년 화폐개혁으로 눌림
3. 1971년 "18층 화교회관 지어 줄게" 하고 철거 → 공사 멈춘 사이 1972년 한국화약이 땅을 사서 1976년 플라자호텔
오늘은 사라진 소공동 차이나타운에 대해 알아보았다
재밌게 봤다면 가기 전에 개추 한 번씩만 부탁한다
ㅂㅂ
출처: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2』 / 오피니언뉴스 [도시탐험, 서울 이야기] 강대호 (2024.5.19) / 뉴스포스트 [도시탐구] 강대호 (2024.7.18, 손정목 교수 저술 인용) / 경향신문 「불도저 시장」 (2016.7.1) / 우리역사넷(임오군란·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위키백과 「소공동」 / 아시아경제 로버트 파우저 (2023.2.2) / 초이스경제 장경순 (2019.4.3, SCMP 인용) / 서울신문 「쌀밥 판매 단속」 / 경인일보 [가장 오래된 이주민 화교] / 나무위키 「더 플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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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XXXXnㅊㅊ!
- 포XXXX교화교입장에선 진짜 개거지같았겠네 ㅋㅋ 90년동안 살았는데 계속 통수맞다 반강제로 쫒겨남ㅋㅋ
- 기X현아찔하다 ㅅㅂㅋㅋㅋㅋ
- 아XXX1그래서 화교자본이 한국을 못먹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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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XX適재밌게 읽었습니다
- eXXXXXXp인천 차이나타운 꽤 재밌는 곳인데 서울에도 그게 있었다면 과연 인천 차이나타운이 지금만큼 성장했을까 싶음.. 지금도 작지만 더 줄었을지도
- 수XX일시청 앞은 이전에도 차이나타?운? 이었음.지금 시청 앞 조선호텔 자리가 본래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남별궁 자리라...(물론 칭제건원 이후 그게 꼴보기싫었던 대한제국이 그거 밀어버리고 환구단 세움)
- 팅XXX러그조차도 청제국주의자들의 흔적이고 후예였을뿐.
- HXXX7미안하고 고맙다
- EXXXXt이런 소소한 이야기 꿀잼 ㅊㅊ
- 왕X위여담인데, 1882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으로 내지통상권을 허용하긴 하는데 이땐 또 청 상인의 물품 구매만 허용됐음. 즉 이들의 판매는 불허했다는거이게 판매까지ㅜ리미트가 해제되는게 바로 다음해 2차 조영조약이 비준되면서. 이거 이후로 이제 모든 국가한테 내지통상권을 완전히 인정해버림 ㅋㅋ
- 방XX슨그때 수교가 최혜국 대우인가? 제일 좋은 조건으로 맞춰주는 조항이 있어서 한곳에 털리면 다같이 빨대꼽는 구조였던가요
- 푸X지판자촌 가리려고 플라자호텔 지었다는 건 본 적 있는데 이렇게 비하인드스토리 있는 줄은 몰랐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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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XXXXXXj재일교포도 3세대부터 국적 취득하던데 이쪽은 아예 한국말도 제대로 못함 걍 본인은 일본인으로 사는 사람 대부분임 아닌애들도 반쯤한국 핏줄에 애정은 있다정도
- SXXXXXXE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한국인 이런 단어 빼고 그냥 일본어쓰던데오카야마에서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 재일교포 3세가 했었는데, 제주도에서 왔다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고향이라고 자기도 가보고 싶다고 그럼
- 함XX들재일교포들도 일본 귀화 엄청함
- 실XX함화교가 간이귀화 대상에 포함된 시점이 2010년부터라 그 전 까지만해도 일반귀화 요건에 맞춰야하다 보니 쉽지가 않았음. 특히 재산부분이랑 증인관련부분이 컸는데 문제는 외국인 토지소유 금지가 1970년까지 계속 남아있던 터라 재산을 모으는거 자체가 힘들었고.설사 재산을 형성했다고 한들 2012년까지만해도 국회의원이나,지방자치단체장,5급 공무원 등 고위급 공무원을 추천서가 필요했었기 때문.
- 실XX함추가로 재일교포쪽은 imf 이후에나 F-4통해서 받아준거고그 전 까지만해도 한국 일본 양국에서 버림받던게 재일교포1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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