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와 대한민국의 산업화에 대해 알아보자..

한국인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미국에도, 중국에도, 남미에도, 중앙아시아에도
그중 오늘은 바로 옆 나라
일본에 사는 교포, 재일교포 이야기다

박 사장: "펨붕이들 안녕 난 오사카 사는 박 사장이다. 반갑다"

화교 왕 사장: "?? 너도 짜장면 집 하냐?"
박 사장: "아니 이 사람아. 우리는 공장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그날 일본 땅에 있던 조선 사람은 200만 명쯤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먹고살려고, 또는 끌려가서 건너간 사람들이다
그중 140만 명쯤은 해방되자마자 짐 싸서 돌아왔다
나머지는 이것저것 정리하다 늦어졌는데
1950년 6·25가 터진다
돌아갈 고향이 전쟁터가 돼 버렸다
박 사장: "...일단 여기서 버텨야겠다"
그렇게 일본에 남은 60만 명 정도가 지금 재일교포의 시작이다

다들 알겠지만 지금 한국 생각하면 안 된다
1948년 한국 수출액은 2,200만 달러였다
아프리카 카메룬(4,000만 달러)의 절반이다
1960년 한국 1인당 국민소득은 79달러
아프리카 가나·수단이랑 비슷했고
필리핀(170달러), 태국(260달러)한테도 한참 밀렸다

"??? 필리핀보다 두 배 넘게 가난했다고?"
1963년에야 처음으로 100달러를 넘겼는데
그래도 가나(208달러)의 절반이었다
일본은 그때 이미 도쿄올림픽(1964) 준비하던 나라다
박 사장 입장에선 옆 동네 부자 나라에 살면서 고향은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셈

1948년 런던올림픽 아직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 전이지만,
대한민국이 처음 태극기 달고 KOREA로 나간 역사적인 첫 하계 올림픽이다. 이때
선수단 67명을 보내야 했는데 나라 살림이 빠듯했다

박 사장: "그래, 우리 선수들 유니폼이라도 제대로 입고 나가야지"
재일동포들이 64만 9,500엔을 모아 보내고
태극기 달린 유니폼까지 준비해 줬다. 가난한 조국을 위해서
1952년 헬싱키올림픽 땐 1,000만엔
1964년 도쿄올림픽 땐 1억 5,000만엔을 모았고,
한국에서 온 응원단 3,489명 관람까지 챙겼다

1950년 6·25가 터지자
일본에서 대학 다니던 교포 청년들이 자원했다

교포 청년: "학교 다닐 때가 아니다. 조국이 위험하다. 간다"
그들은 당시 미군정하의 일본에서 미군정은 참전을 반대했지만, 탄원서와 혈서등을 내며,
결국 참전하게 된다.
재일의용군 642명
그들은 '인천 상륙작전' 에 참여했다. 전사 52명, 실종 83명
135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이후 6.25가 끝나고
생존자 가운데 265명은 일본으로 돌아갔고, 242명은 재입국을 거부당했다.
일본인 이웃: "조센징은 저리 가"
일본에서 재일교포는 2등 시민이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일본 사람들한테 일자리를 뺏기고
살려고 암시장으로 갔다
오사카 쓰루하시 암시장
하루 20만 명이 드나들던 곳인데 상인 중에 동포가 많았다
여기서 자전거 타이어를 팔던 29살 청년이 있었다
이희건
나중에 신한은행을 세우는 그 사람이다
1946년 일본 당국이 "무허가"라며 시장을 닫아 버리자
이희건이 상인 대표로 담판을 지어서
1947년 합법 시장으로 다시 열게 만들었다
박 사장: "그 친구 그때부터 떡잎이 달랐지"
암시장만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교포로 사는 건 매일 매일이 벽이었다

히타치 인사과: "합격 축하합니다. …어? 자이니치이시네요? 채용 취소입니다"
1970년 재일교포 청년 박종석은 일본 이름으로 대기업 히타치 입사 시험에 붙었다
그런데 한국 국적인 게 알려지자 채용이 취소됐다
박종석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1974년 6월 요코하마 지방법원에서 이겼다
이 재판을 계기로 일본 곳곳에서 재일교포 차별을 없애라는 운동이 일어났다
같은 1970년 10월 6일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일본에 귀화한 재일 2세 와세다대 학생 양정명(일본 이름 야마무라 마사아키)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차별에 항의하며 말이다.
그가 남긴 유서의 제목은 "항의·탄원서"
이듬해 나온 유고집에 작가 이회성은 "두 개의 조국을 가진 사람의 외침"이라는 서문을 붙였다

그럴 때일수록 그들에게 '조국'은 소중했다

도쿄 미나미아자부의 주일 한국대사관 (사진은 2013년에 새로 지은 신청사)
이 땅이 원래 재일교포가 내준 땅이다.
주인공은 오사카의 방적왕 서갑호
어린나이에 오사카로 건너가 방적 공장을 일으킨 사람이다

서갑호: "대사관 쓸 건물 없다고? 내 조국이 ㅠㅠ"
1951년부터 공짜로 빌려주다가
1962년엔 아예 소유권을 나라에 넘겨 버렸다
1975년엔 대사관저 땅까지 기증했다
나라는 1979년 그 자리에 청사를 지었고, 2013년 지금 건물로 다시 지었다
이 소문이 동포 사회에 퍼지면서
일본에 있는 한국 공관 10곳 중 9곳을 재일동포가 마련했다.

왕 사장: "...나라가 대사관 땅이 없어서 교포한테 받았다고?"
박 사장: "그땐 그랬다. 그것도 냄새나는 조센징한테 안판다고 일본인 부인 명의로 사고 그랬다."
(오사카민단 박영철 부단장 회고)

박정희: "재일교포 여러분, 나라가 어렵습니다. 조국에 공장 좀 지어 주시오"
뭘 할래도 돈도 기술도 없던 한국 정부는 교포 자본을 불러들이기로 한다
1963년부터 교포 재산을 들여오게 하는 제도까지 만들었다
1963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한국에 반입된 재일교포 투자액은 1억 달러 이상으로 당시 연간 수출 총액 5400만
달러의 2배였다. 1963년 서갑호 사장은 한번에 100만 달러를 한국으로 보내기도 했다.

한국 공무원: "조국에 공장 좀 지어 주십쇼… 애국하시는 겁니다…"

박 사장: ".그래..애국?"
그리고 재일 기업인 이원만(한국나일론, 지금 코오롱)이 아이디어를 낸다
"재일교포 전용 수출 공단을 만듭시다"

1965년 구로동 군용지 14만 1,000평에 공단을 짓기 시작했고
1967년 4월 1일 준공했다
준공 때 입주 기업은 29곳이었다
그중 재일교포 기업이 18곳
국내 기업 9곳, 미국 기업 1곳, 기타 1곳

박 사장: "내 조국이 근대화로 간다!"
준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재일교포들이 이곳에 조국의 산업건설에 이바지하겠다며 모든 악조건을 무릅쓰고 공장을 세웠다"
구로만이 아니다
구미공단은 곽태석(전자)·이원만(직물) 같은 재일 기업인 투자로 시작했고
마산 쪽은 마산 출신 재일 기업인 이명조가 공단 조성을 이끌었다
김백영 광운대 교수는 이렇게 정리했다
"1960년대 한국 수출의 첨병 역할을 한 구로·구미·마산 공단은 대부분 재일동포 기업가의 투자로 문을 열었다"

한국 사람: "저거 일본 돈이래"
한국 사람: "반쪽발이들이 와서 공장 차렸대"
박 사장: "...내가 일본에선 조센징인데 여기선 반쪽발이라고?"
김백영 교수는 이렇게도 말했다
재일교포 투자는 애국심이라며 환영받았지만
한편으로는 "반쪽발이", "일본계 자본"이라는 이유로 배척받기도 했다고

대사관 땅 내준 서갑호도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요청으로 모국에 왔다
서울 태창방적을 100만 달러에 사들여 방림방적으로 바꿨고
윤성방적도 세웠다
방림방적과 윤성방적의 고용 인력은 4천명에 달했으며, 그는 젊은 여공들을 위해 방림방적 공장 내부에 ‘방림여고’를 세워 교육기자재 및 수업료를 지원하며 학업을 이어갈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데 1974년 1월
윤성방적 공장에 큰불이 나 143억원어치가 탔다
같은 해 1차 오일쇼크까지 덮쳤다
박 사장: "...조국 공장에 불나고, 기름값은 폭등하고 그 양반 참 안됐어..."
그해 일본 본사 사카모토방적이 어음을 못 막고 부도가 났다
방림방적·윤성방적도 자산을 팔아야 했다
이후 서갑호는 1976년 세상을 떠났다

재일교포 중에 일본에서 제일 크게 된 사람을 꼽으라면 이 사람이다
신격호
일제강점기에 맨몸으로 일본에 건너가 롯데를 세웠다. 무려 세계 4위 부자 까지 갔던 사람이다.
1970년 11월 13일
롯데제과 껌에서 쇳가루가 나왔다는 판정이 나오고 제조 정지 명령이 떨어진다

신격호: "...껌에서 쇳가루?"
그런데 바로 그날, 박정희 대통령이 신격호를 청와대로 부른다
박정희: "껌 문제는 알아서 조치해 주겠소. 대신 조국 소공동에 호텔 하나 지어서 맡아 주시오"
손 교수가 책에 쓴 얘기다
대통령이 롯데껌 파동을 '조치'해 주면서 호텔을 지어 경영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
손 교수는 정부 속셈도 이렇게 봤다
신격호 재산은 대부분 일본에 묶여 있었으니
일부라도 한국에 투자해서 남겨 두게 하려던 거라고
그리고 손 교수는 이렇게 증언했다
당시 실세였던 김종필 의원과 양택식 서울시장이 자신을 불러
"호텔롯데 건설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서울시: "네네~ 신 회장님 뭐든 말씀만 하십쇼^^"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지금은 중국인으로 난리인 제주도,
제주도는 감귤로 유명하다. 그 제주도로 재일 교포들이 보낸 감귤 묘목이, 388만 그루였다.
그렇게 제주도가 '감귤'로 유명한 섬이되는데 교포들의 도움은 컸다.

반도호텔은 1936년 일본인이 지은 호텔이었다
신격호는 1974년 6월 이 호텔을 사들이고 공사를 했다
그리고 1979년
지하 3층, 지상 38층, 객실 1,020개
당시 동양 최대 특급호텔, 롯데호텔 서울이 문을 연다

왕 사장: "우리 쫓겨난 자리엔 플라자호텔, 그 옆엔 롯데호텔..."
왕 사장: "소공동이 아주 호텔 동네가 됐네"
한국 사람: "근데 롯데 그거 일본 쪽바리 회사 아님?"
박 사장: "씨발 또..그 소리"
재일 기업인들은 1974년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를 만들어 모국 투자를 밀었다
그러다 보니 모국에 투자하는 교포들의 은행이 필요해졌다
이희건: "그래? 그럼 우리가 은행을 하나 만들자"
1982년 7월 7일 서울 명동
재일동포 341명이 250억원을 100% 출자해서 은행을 세운다
그게 바로 신한은행이다
한국 최초의 순수 민간 자본 은행이었다

1988 서울올림픽이 결정되자
재일교포들은 바로 후원회를 만들고 7년 동안 돈을 모았다
모인 돈은 약 100억엔, 당시 돈으로 500억원이 넘었다
약 10만 명이 성금을 냈다
그 돈으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수영장·테니스장을 짓고
미사리 조정경기장까지 만들었다
박사장 : "조국에서 올림픽이라니 참 감동이었지..."
그리고 재일본대한부인회 어머니들은

부인회 어머니들: "하루 10엔씩 모으자"
하루 10엔 저금으로 16억 4,000만원을 모아서
전국 관광지 14곳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싹 바꿔 줬다

박사장 : "외국 손님 오는데 화장실 쪽팔릴까 봐, 그럼 창피하잖아.."

1997년 말, 한국이 외환위기로 IMF에 손을 벌린다
박 사장: "뭐?! 조국이 부도 직전이라고!?!?!? 다들 엔화 들고 모여!!!"
민단은 "한 가정 10만엔 본국 송금 운동"을 벌였다
박 사장: "은행 가서 한국으로 쏴!!!"
780억 6,300만엔.
당시 환율로 7억~10억 달러쯤이다
정부가 1998년 3월 판 엔화 국채 300억엔도 교포들이 많이 샀다고 전해진다
같은 때 한국에선 금모으기 운동이 있었다
351만 명이 227톤, 약 18억 달러어치를 모았다

"??? 60만 교포 사회가 780억엔을 긁어모아 보낸 셈이다

나라 전체가 장롱 속 금반지까지 꺼내서 나라를 살려보려고 한 그때
훨씬 적은 수의 일본에 사는 교포들이 엔화로 보낸 돈은 당시 매우 큰 도움이었다.
한국 : "어 반쪽발이 왔네? 안녕하시므니다 말고 안녕하세요 해봐~~ 감사하므니다 말고 감사합니다."

박 사장: ".에효..일본에선 조센징, 한국에선 반쪽발이. 양쪽에서 욕먹는 게 우리 팔자다"
재일교포 공장이 모여 있던 구로공단 자리, 가리봉동은 현재는
지금은 조선족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중 하나다.

박사장 : "참 힘들었지만 그래도 거침없이 달려왔던 인생이었지....그래도 지금 대한민국을 보면 뿌듯해.."
3줄 요약
1. 해방 뒤 일본에 남은 60만 재일교포는 1948 올림픽 유니폼부터 6·25 참전(642명)까지 나라가 생길 때부터 도왔다
2. 구로·구미·마산 공단의 대부분을 재일 기업이 열었고, 대사관 땅·신한은행·올림픽 IMF때도 도왔다.
3. 그런데 일본에선 조센징, 한국에선 반쪽발이 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재일교포 이야기를 해 보았다
재밌게 봤다면 가기 전에 개추 한 번씩만 부탁한다
ㅂㅂ
출처: earticle 「'반쪽발이들'의 성장 서사」 (양정명 사건)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국적조항 차별철폐투쟁」 (히타치 재판) / 아시아경제 「"박정희와 신격호의 비밀회동으로 호텔롯데 탄생"」 (2015.8.5,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인용) / 경향신문 [반세기, 기록의 기억] 반도호텔과 롯데호텔 (2024.1.11) / 뉴시스 「관광보국으로 세워져 45주년 맞은 롯데호텔 서울」 (2024.9.27) / 연합뉴스 「"구로·구미·마산공단 주도"…재일동포 모국공헌 재조명」 강성철 (2017.9.29) / 건국대 HK+ 모빌리티 인문지도 「재일한국인기념관」 (정진성 외 『'모국공헌'의 시대』 2020 인용) / 융복합콘텐츠연구센터 「구로공단 주인은 재일동포였다」 / 스포츠경향 「조국이 힘들 때마다 나섰다」 (2026.9.17) / 서울신문 「민단 70년」 (2016.7.22) / 한국일보 「주일대사관 부지 기증 서갑호」 (2024.7.12) / 재외동포청 「모국 투자의 선구자 서갑호」 / 월드코리안 「IMF 때 15억달러 본국 송금」 / 위키백과 「재일학도의용군」「금모으기 운동」 / 한국경제 생글생글·서울신문(1960년대 소득·수출) / 헌법재판소 99헌마494 (200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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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X젤재일교포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박정희 정권이었지만정작 박정희는 재일교포들까지 간첩조작으로 빨갱이 만들었던데전에 학교에서 특강 하나 들을때 일본 대학에서 교수 하고 계신 분이 오셨는데 (한국말 잘하심. 당연하게도)젊었을때 교환학생이었나 유학생이었나 아무튼 한국 들어왔다가 간첩조작 당해서 10년 넘게 옥살이 하다가 겨우 풀려났다더라솔직히 내가 그렇게 당했으면 한국을 평생 원망하고 저주하고 다시는 제 발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 같은데그럼에도 그분은 여전히 대한민국과 한민족을 사랑하시는 것 같아서 상당히 인상적이었음
- 리XXX맇저 정도면 맨헤라녀들은 명함도 못내밀 집착에 가까운 사랑이다
- 아XXX1감사한 일이다.
- 가XXXXX차맞는지 모르겠지만우리나라가 재일교포들을 외면했을때 북한은 지원도 많이 해줬다고 들었음그래서 조총련이 엄청 커지고 간첩사건은 다 연관되어있었고나중에 간부들이 참회하며 책도 냈고그 책내용은 일본인 납치도 많아서 일본내에서 여론도 안좋아졌고 북한도 힘을못쓰니 점차 약해져갔지그리고 지금 육영수 여사관련으로 조총련 문세광이 범인인데 박정희가 유화정책으로 재일교포 데려온것도 있었음그때 조용필이 탄생했다고하고실제로 북한에 많은 사람들이 우호적이고 세뇌당했으니 그당시로 보면 어느정도 맞다고 생각다만 재일교포들은 어쩔수없는 아픈 사연이 있으니 참작이 가능한거고
- 주XX상개추
- 브X젤그당시로 보면 어느정도 맞다 << 뭐가 맞다는 말임?
- 마XXXXX리한민족을 사랑하시는 것 같아서 <- 이거 보니까 빨갱이짓 했다고 확신함.
- 랑X루갑자기 뜬금 박정희네
- 창XXX지한민족 사랑이랑 빨갱이랑 뭔 상관임 ㅋㅋㅋㅋ
- 1XXm억울하게 당한 사람 많았지.. 재일교포들이 국가 위신 챙겨주려고 도쿄 미나토구 그 비싼 땅에 총영사관 지어줬는데
- 프XXX스신격호 이전에 한국에 투자요청했던 사람이 박찬호 장인의 아버지 한국에 투자했던 신문사가 박정희 정권의 표적이 되어 사라지자 박정희 정권에 반감을 갖고 거절 그 신문사 사장 재일이였는데 간첩혐의로 사형당함 웃긴건 진보성향 신문사였지만 이승만 정권무너지고 박정희 쿠데타 성공하자 응원했던 신문사임 사장이 재일이라고 조총련과 연계시켜 허위로 조작 사형시킴
- 뷔XX즘비추 보소 ㅋㅋ
- BXXXX8양질의 정성글 ㅊㅊ드립니다
- HXXX7오늘날 대한민국을 만든 주축이신 재일교포를 포함한 모든 해외 한민족에 경의를 표합니다
- 아XX고진짜 좋은 글이네. 고마워.
- GXXXXXXeㅇㅇ 본문처럼 제주도가 귤로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제주 출신 교포들이 귤나무를 지원해줘서 그랬던 것도 있음제주 사람들은 귤나무를 돈나무라고 부르면서 정성스럽게 키웠고, 일부 마을에는 재일교포들을 위해서 비석도 세우기도 함
- 셀X재일교포들은 북한 간 사람들이 제일 불쌍함
- 나XXXXXX스여기도 종종 자이니치 이 반쪽발이들 타령 종종 하곤 했지툭하면 조선인계열이랑 엮어서 태클걸고
- (XXX)앵 팸코에서?
- 만X고ㅇㅇ 빨갱이들이라고 까는새끼들 많았음
- 프XXX스펨붕이중에 어린시절 조총련 학교다녔다고 한국에와서 군복무까지 했는데 욕하던 놈들있었지 그당시는 조총련 학교가 많아서 재일들이 자식들 많이 보낼수밖에 없었는데
- 1XXmㅊㅊ
- 로X법6.25 때 선봉에 서서 대한민국을 짓밟은 조선족과는 차원이 다르네...
- 탈XX자엄마가 재일교포입니다 이런글 정말 감사합니다
- 1XXXXXXk이상하리만치 국가에 사랑이넘치는 저 시대..지금은 왜..?조선족 친북 친공 친중 친일 << 얘네들의 문제 맞지..?아니... 이젠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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