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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의 교훈과 프랑스군이 마지노선을 건설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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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지노선으로 이어지는 요새의 계보

2. 육군이 사실상 두 개였던 국가

3. 요새의 나라

4. 독일이 한 사람의 인생 설계를 망가뜨려서 벌어진 일




Marshal_Joffre_and_Marshal_Foch_ride_beneath_the_historic_Arc_de_Triomphe_1919.jpg 1차대전의 교훈과 프랑스군이 마지노선을 건설한 이유



승전 이후 프랑스군 최고 사령관들 사이에서 요새 건설 논쟁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통설과 대단히 기묘하게 상충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예를 들어 포슈는 구축해야 할 방어체계에 관해 의견을 물은 페탱에게 1920년 5월 3일 자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러한 방어체계는 실현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므로, 국경 조직을 규정할 원칙을 지금 당장 확립하고, 이어서 원칙을 프랑스-독일 국경에 어떻게 적용할지 정하는 일이 더욱 필요합니다."

포슈는 프랑스-독일 국경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밝히지 않았다. 이 시기엔 군사 국경으로 라인강이 존재했음을 생각하면 애매모호한 답변이다. 또 이 편지는 이후 포슈의 주장과 완전히 상충되기 때문에 기이하다. 예컨대 포슈는 1926년 12월 17일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에게 도구(기동부대)가 없다면, 우산(요새)이 국가를 지켜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방어적이었다는 통념이 있는 페탱은 반대되는 주장도 수없이 많이 했다. 1926년 12월 15일, 이틀 후 총회에 대비한 상임전쟁심의회 회의에서 페탱은 요새 건설을 시작하기 전에 130억 프랑을 장비에 지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매우 놀랍게도 조프르와 기요마가 요새보다 장비를 우선시하는 것은 위험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왜 놀라운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심지어 마지노선의 실질적인 건설자인 폴 팽르베는 야전부대가 요새보다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사실 페탱은 어떤 주장을 한 다음 그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다시 그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변덕을 끊임없이 부렸다. 기동부대를 우선시하는 발언이든 마지노선을 우선시하는 발언이든 수십 개의 인용문을 수집할 수 있을 정도다. 


덕분에 2차대전 이후 열린 페탱의 재판에서 그의 변호인들은 페탱의 전쟁 준비 책임을 쉽게 면제해 줄 수 있었다. 적절한 취사선택으로 페탱이 마지노선에 반대했다고 주장하면 됐으니 말이다. 페탱의 전기작가 중 한 명인 피에르 부르제는 이러한 변덕스러움이 사물과 인간에 대한 페탱의 무관심에서 비롯되었다고 결론내렸다.



간단히 말해 모든 주요인물이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공격과 요새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쩌면 자기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이 논쟁에서 사용된 '국경 조직'이라는 용어는 온갖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국경 조직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깊이 파고들지 않으며, 온갖 이득을 국경 조직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또 국경 조직은 자신의 정책이었다고 주장하길 원했던 정치인들이 반가워한 표현이기도 하다. 정치인이나 쓸 법한 표현을 군인들이 사용한 것이다.



1920년부터 1940년까지 20년 동안 국방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린 상임전쟁심의회에서 요새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으나, 진정한 만장일치가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당시의 정치적 환경 때문에 프랑스군의 최선임 장군들조차 견해를 바꾸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상임전쟁심의회 구성원 대부분이 그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상임전쟁심의회에 들어가고 나면 1년 마다 재임명되어야 했는데, 2년 이상 머무른 장군은 원수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들어간 몇몇 인물 뿐이었다. 그러나 빈번한 구성원 교체만으로는 빈번한 의견 변화를 설명할 수 없다. 



1920년으로 돌아가 그해에 시작된 고찰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보자. 국경 조직 착수 및 추진의 핵심 책임자는 페탱과 뷔아 콤비였던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뷔아가 마지노선 프로젝트의 개념적 성숙을 주도했음은 확실하다. 


페탱은 프랑스군 총사령관으로서 국경 조직 연구를 성실히 진행시켰다. 이 연구들은 주로 앙리 구로 장군이 종심방어로 독일군 최후의 공격작전을 막아낸 4차 상파뉴 전투를 최신화하고 확장한 것이었다.


상임전쟁심의회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해당 연구들을 검토하고 입장을 정하기로 했다. 1920년 1월 31일에 페탱(1월 23일에 재조직된 상임전쟁심의회 부의장을 맡음)이 평시 국토 방어 조직을 위하여 야전군 전장을 조직하되 그 일부는 요새화지대로 하자는 내용의 문서를 구성원들에게 보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야전군 전장은 페탱이 1917년에 종심방어 교리를 개발하며 사용한 용어이다.


프랑스군의 1차대전 교리를 생각해보면, 야전군 전장으로서의 요새화지대를 만들자는 페탱의 주장은 그저 기동부대가 야전을 치룰 공간을 평시에 조직해두자는 주장일 뿐이다. 이는 조프르가 1915년 8월에 베르됭 요새진지를 요새화지대로 조직해 베르됭 방어체계를 축차 방어선에 따른 기동방어체계로 재구성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1920년 당시 각 요새진지 사이의 공간, 즉 간격지대의 성격이 무엇인지는 애매한 상태였다. 특히 이 공간 역시 방어 조직의 구성요소로 결정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요새진지끼리 연결되도록 간격지대에 구조물을 건설하면 연속 방어선을 조직하는 셈이 되는데, 방어선을 이렇게 구축하면 1차대전의 야전군 전장과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1920년 3월 5일, 전쟁부가 알자스-로렌 국경 조직에 관한 지침을 내놓았다. 내용은 일련의 전장을 준비함으로써 국토의 절대적 불가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알자스-로렌을 서둘러 방어하려는 분위기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두 지방을 막 되찾았으니 침공로, 특히 아무런 자연 장애물이 없는 로렌 침공로를 서둘러 봉쇄하려한 것이다. 이를 위해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리는 것부터 철근 콘크리트 및 강철 구조물 건설에 이르기까지 지형에 하나 또는 여러 겹의 방어선으로 방어 조직을 완료하고자 했다.



1920년 5월 17일, 대통령 데샤넬의 주재로 열린 상임전쟁심의회 회의에 조프르, 포슈, 페탱을 포함하여 모든 구성원이 참석한 가운데 요새화지대가 엄중한 비난을 받았다. 포슈, 기요마, 망쟁, 니벨은 요새화지대란 방어 전략을 의미한다고 지적하며 강력히 거부했다.


포슈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오늘날의 우리는 라인강에서 방어해야 합니다. 15년 후 독일이 라인강을 건넌다면 이는 조약 위배가 될 것이며, 그때 우리는 라인강으로 달려가 그곳을 장성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조프르 역시 요새화지대를 건설하고 싶다면 요새화지대가 작전계획과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전직 공병감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요새는 비용이 많이 들고 적절한 수준으로만 건설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포슈보다도 단호했던 사람은 바로 아돌프 기요마였는데, 그는 프랑스군이 오직 공세만을 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폴레옹의 관점과 유사하게 요새를 보급창으로서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니벨 또한 자신의 견해를 뛰어나게 개진했는데, 그는 항공기 및 전차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오직 이러한 조건에서만 기습 공격이 가능해질 것이며, 기습 공격만이 모든 복수의 야욕을 싹튼 순간에 뿌리째 뽑아버리고 전쟁을 신속히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리고는 이러한 일갈로 끝맺었다.

"Caveant Consules!(집정관들이여 주의하라!)"


토론은 혼란스럽게 진행되었고, 대통령과 전쟁장관은 장군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워 했다.


영구 요새, 야전 요새, 야전군 전장, 요새진지, 요새화지대, 간격지대, 국경 조직, 방어 조직 등 여기서 사용된 온갖 용어의 차이를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군인들이 동일한 용어에 동일한 정의를 부여하며 토론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예컨대 프랑스 장군들은 방어 조직의 정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합의하지 않으면서 논쟁했다. 요새화지대만 해도, 페탱의 요새화지대는 국경에 건설되는 연속 방어선이었던 반면 조프르의 요새화지대는 기동을 위한 공간이 넓게 뜷려있는 방어선이었다.


정의를 내리는 데 성공한다 쳐도 그것이 건설할 구조물의 성격까지 합의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연속 방어선을 건설한다 치면, 콘크리트 요새를 선형으로 쭉 건설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냥 참호를 파면 되는가? 그리고 인공 호수와 강 등 온갖 종류의 장애물, 나아가 도로, 철도, 보급창, 전화선, 무선전신기 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들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방어 조직의 명칭이 다를 수도 있었다.




이러니 어느 방안도 과반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일단 회의를 끝내고 위원회들을 새로 설치한 후, 각자 국토의 특정 부분(알자스-로렌, 북부 국경, 해안 등)에 대한 연구를 개별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조프르가 맡은 위원회는 프랑스 방어 및 수도 방어 전반에 관한 포괄적인 연구를 담당했다.


조금 뒤인 1921년, 페탱이 '국토의 방어 조직을 위한 문서'라는 지침 초안을 작성했는데, 이는 여전히 야전군 전장 조직을 권장하는 내용이었다.


주요인물들 사이에 대단히 많은 회의와 비공식적인 의견 교환이 수없이 이어졌으나, 페탱의 진영은 국경에 연속적인 야전군 전장을 조직하자고 주장했다.


총참모부의 한 문서는 위 주장에 따라 국경 전장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며 이렇게 정의했다.

"국경 전장은 국토를 폐쇄하기 위해 조직된 연속적인 울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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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프랑스 장성'을 쌓아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프랑스 장성이라는 과장된 표현은 당시 프랑스에서 굉장히 많이 사용된 표현으로, 정계와 신문은 물론이고 군부에서조차 자주 사용했다. 이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 장군들이 몰랐을 리 없는데 말이다.

 

반대자들이 프랑스 장성에 맞서 집결했다. 기요마는 이렇게 썼다.

"현재 재정 상황에서 이용가능한 예산은 우선 공세가 가능한 강력한 군대를 조직하는 데 투입되어야 한다. 남는 돈은, 남는 돈이 있는 경우에 한해서, 요새 조직에 쓰일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기요마 역시 나중에 가면 양보하기 시작한다.



1922년 5월 22일, 밀랑 대통령 주재로 엘리제궁에서 새로운 상임전쟁심의회 회의가 열렸으나(한 번에 모든 주제를 다룰 수 없어 회의가 여러차례 이어졌다), 여전히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회의에서 세 가지 질문이 던져졌다.

  1. 국토의 불가침성을 확보하기 위한 평시 방어 조직에 착수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가?

  2. 평시에 영구 요새에 의존해야 하는가, 아니면 오직 야전 요새에만 의존해야 하는가?

  3. 국경선을 따라 연속적인 전장을 조직해야 하는가?

여전히 참석자 숫자만큼의 답변이 나왔지만, 이 시점엔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입장이 나누어졌다. 바로 연속 방어선(드브네, 뷔아, 페탱)과 요새화지대(조프르, 기요마)다. 두 개념 모두 세레 드 리비에르가 마지노선 이전 세대의 요새 체계를 계획하며 만들었던 개념인 방어차단선과 요새진지를 어느 정도 반영한다.


일부는 요새 체계가 작전계획에 미칠 결과를 우려하여 작전계획이 요새 체계에 종속되지 말아야 한다고 다시 지적했다.


두 입장의 본질적인 차이는 단순하다. 한쪽은 기동전으로 싸우기 위해서 기동이 방어 조직에 가능한 한 적게 얽매이도록 간격지대를 빈 공간으로 두려 했고, 다른 한쪽은 적어도 전쟁 초기에는 철저히 방어 목적으로 기능할 연속적인 방어 조직을 세우려 했다.



던져진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매우 다양했다. 예를 들어 포슈는 첫 번째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변했는데, 국토의 불가침성을 군사작전의 목표로 삼는 것은 본말전도이며 위험한 안도감을 퍼트릴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몇몇 장군은 포슈보다 강경했다. 다시 한 번 기요마가 이렇게 선언했다.

"프랑스 장성은 재정적 관점으로는 몽상이고 군사적 관점으로는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전쟁계획과 모든 작전계획을 기존의 또는 초안 단계의 요새에 종속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나아가 요즘같은 시대에 프랑스를 하나의 거대한 요새진지로 전환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프랑스를 거대한 요새진지로 전환하는 것이 당대 프랑스인들이 원한 바임을 알고 있다.


장군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밀랑은 불쾌감을 표했고, 회의는 조프르가 맡게 될 국토방어위원회를 통해 종합안을 연구하자는 결론으로 끝났다.


조프르는 알자스-로렌의 방어 조직을 구체적으로 연구하며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그러다 페탱이 비공식적 경로(전쟁장관을 의미)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고 있다면서(이는 불통으로 인한 조프르의 오해였다) 사임해버려 기요마가 위원장직을 이어받게 되었다.


여담으로 저건 조프르가 베르됭 전투에서 페탱을 사다리 위(집단군 사령부)로 걷어차 쫒아내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페탱이 버릇을 못고쳤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다시 회의가 열렸지만 양측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떠한 타협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장은 더 강경해졌고, 이 시점엔 포슈와 뷔아가 대표가 된 두 파가 어느 때보다 심하게 대립했다.


포슈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군사 조직의 본질적 목표여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자 뷔아는 '국경의 불가침성'이 위원회 연구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의회와 여론이 국경에 간격지대가 존재하는 것, 즉 독일군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합의점은 있었다. 벨기에 국경까지 방어 조직을 연장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나중에 연장 시도는 이루어진다. 그래서 요새 신봉자들이 스당까지 마지노선을 건설했더라면~ 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스페인 왕위게승 전쟁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또 하나의 '진정한 요새는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이다.


새로 참모총장이 된 뷔아의 입장은 1923년 3월 16일 문서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는 그가 구상한 국토 방어 조직의 완벽한 개요를 담고 있다. 거기서 다음과 같은 고찰을 볼 수 있다.

"연속 방어선을 조직할 것이며, (예산 문제 때문에 단계적으로 건설해야 함을 인정하므로) 연속성이 연속 방어선 전체에서 잠재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요새진지는 연속 방어선의 축으로 간주되며, 간격지대 조직이 축들을 연결한다. 국토의 불가침성은 방어 조직에 있어 지혜의 시작이자 끝이다. 국경에서 방어전이 벌어질 날, 반드시 연속 방어선상에서 싸우게 될 것이다 […]."


여기에는 훗날 마지노선이라 불리게 될 요새 체계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폴리테크니시앙인 뷔아의 최후 선언은 다음과 같다.

"또한 '국가 요새' 방어선은 보방의 바로 그 원칙들에 따라 구성될 수 있음이 드러난다."

다름아닌 보방이 언급되었으니, 권위에 호소하는 논리적 오류이긴 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1925년 12월 31일, 새로운 위원회인 '국경방어위원회'가 설립되었는데, 다름아닌 기요마가 위원장을 맡아 북부, 북동부, 남동부 국경으로 범위를 한정하여 연구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토'에서 '국경'으로 변한 것이다.



이후로도 수많은 설왕설래와 불협화음이 이어지다 1927년 10월 12일 상임전쟁심의회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확신이 아니라 피로감 때문에 마지노선 건설이 확정되었다.


각자의 입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무뎌졌다. 포슈조차 토론에 지치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국경의 방어 조직을 두고 부질없는 논쟁을 벌이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프랑스의 안보는 프랑스군의 힘과 조직에 달려 있다고 상기시키려 했다.


하지만 모두가 포슈의 말에 예의상으로만 귀를 기울였다. 포슈가 프랑스군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1928년 7월에 중병에 걸렸고 1929년 초에 사망했다.


위 회의에서 연속 방어선에 대한 반대표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포슈를 보면 알겠지만 이 아름다운 만장일치 밑에는 여전히 상이한 견해들이 숨어 있었다. 나이, 권위주의, 그냥 끝내자는 피로감, 여론과 정계의 압력만이 이러한 집단적 포기를 설명할 수 있다.




1928년이 되면 상황이 완전히 정리된다. 요새가 승리했고, 공세가 패배했으며, 더욱 심각하게는 공세파가 요새파에 합류했다. 샤를 드골조차 이 시기엔 요새파였다.


1927년에 완성된 총참모부 제3부의 문서는 1919년 이후 끊임없이 대립해 온 두 의견을 매우 잘 요약해 준다. 그러나 양쪽 모두 어느 순간부터는 방어 조직의 필요성 자체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게 되었다.



이 토론을 따라가 보면, 마치 모든 발언이 후대에 개개인을 취사선택으로 옹호하거나 비난할 재료를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장군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대단히 어렵다. 


예를 들어 기요마는 마지노선 찬성파로 알려졌었고, 뷔아는 반대파로 알려졌었다. 기요마가 논의 중 실제로 방어 조직을 우선시하는 발언을 한 적 있고, 반대로 뷔아가 공세를 우선시하는 발언을 한 적 있기 때문이다. 


많은 주장이 말싸움에 불과하고, 당시엔 프랑스의 대전략을 프랑스군이 알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장군들이 달성하고자 했던 목표조차 불분명하다.



1541.png 1차대전의 교훈과 프랑스군이 마지노선을 건설한 이유


비잔틴적이라는 형용사는 7년에 걸쳐 이루어진 프랑스 장성진의 초현실적 의견 교환에 대단히 적절하다.



공세주의자조차 요새화라는 숙명에 순응하도록 만든 정치적 압력에 노출된 상임전쟁심의회 전체가 연속 방어선 조직을 승인한 순간부터, 이 국가적 프로젝트가 저절로 굴러가기 시작하더니 마지노선이 탄생했다.



이론상 1935년까지는 프랑스와 독일의 군사 국경이 라인강이었고, 라인강 우안 비무장화 조항이 존재했으며, 1925년 조약으로 재확인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마지노선은 패배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라인란트 재무장 때 프랑스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images (4).jpg 1차대전의 교훈과 프랑스군이 마지노선을 건설한 이유


그럼 마지막으로 프랑스군이 1차대전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알아보자.


이것은 총사령부가 1919년 2월 24일에 1차대전의 교훈을 고찰하여 발간한 '미래의 포병과 전차에 관한 일반 고찰'을 통해 알 수 있다. 


여기서 프랑스군은 전차를 미래전의 핵심으로 간주했고, 기갑사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2차대전 기갑사단의 핵심 부품을 대부분 맞춰 윤곽을 매우 정확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으며, 완전히 기계화된 군대가 수행하는 기동전을 그려냈다.


이 문서는 생산성이 핵심 장점인 보병지원용 경전차, 느리지만 두꺼운 장갑으로 대전차포가 포함된 저항을 극복함과 동시에 전차전도 수행하는 중전차, 지휘전차, 보급전차, 관측전차, 자주포, 화포로 무장한 근접항공지원용 항공기, 기계화보병, 야지와 도로에서 뛰어난 기동력을 발휘할 중형전차를 언급한다.


이 때 '보병에게 온전한 기동력을 되돌려줄' 이라는 표현으로 중형전차가 보병전차임을 확인하고 있으나, 여기서 말하는 보병은 걸어다니는 보병이 아니라 기계화보병을 의미한다.


또한 동일한 기동력을 갖추고 있는 기갑정비부대를 창설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문서에 따르면 이러한 기계화부대를 '결정적 전투'가 일어날 지점으로 빠르게 진출시키는 능력이 미래전의 핵심이다.



POSTE-1960-43a22a22a1419160159.jpg 1차대전의 교훈과 프랑스군이 마지노선을 건설한 이유


전차의 아버지 에스티엔이 1921년에 밝힌 포부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트럭이나 트랙터 8000대와 전차 4000대에 20000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충격부대가 하룻밤만에 80km를 주파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전차를 보병에 두는 게 아니라(1차대전 땐 전차가 포병이었는데 1920년에 보병이 되었다) 별개의 병과로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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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의 첫 공식적인 작전계획 또한 1차대전의 교훈에 부합한다. 1924년에 등장한 A계획은 전쟁이 발발하는 즉시 루르를 점령한 후 독일 남부를 돌파해 체코슬로바키아를 비롯한 소협상국과 전선을 연결하는 구상이었다.




images (5).jpg 1차대전의 교훈과 프랑스군이 마지노선을 건설한 이유


미래전 구상과는 별개로, 1921년에 교리가 새롭게 갱신되었다. 이 교리에 따르면 전투는 오직 포병의 사정거리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며, 집중된 화력을 중앙에서 통제하면서 단계적으로 싸워야 한다. 이 교리의 핵심 제작자는 외젠 드브네고, 그가 지휘한 몽디디에 전투의 교훈이 반영되어 있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포병을 차량화, 모듈화하여 속도를 대단히 빠르게 만들어 놓고 통제하면서 몽디디에 양익에서 포위기동을 펼쳤다. 


이건 어디까지나 프랑스군이 지금 당장 쓰기 위해 만든 교리다. 당시 존재했거나 기술력으로 구현할 수 있었던 장비 스펙을 반영하여 완벽하게 논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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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전쟁

프랑스군은 1936년에 1921년 교리를 갱신했는데, 차이는 단 하나였다. 1921년 교리엔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1936년 교리는 1921년 교리를 법제화 했을 뿐이다. 


21년의 시간이 흐른 후, 프랑스 중전차가 돌파구를 뜷자 자주포와 폭격기의 화력지원을 받는 기계화보병과 중형전차가 종심으로 진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실시간 네티즌 베스트 반응

  • 브X젤확신이 아니라 피로감 때문에 마지노선 건설이 확정되었다.나이, 권위주의, 그냥 끝내자는 피로감, 여론과 정계의 압력만이 이러한 집단적 포기를 설명할 수 있다.이 부분 좀 인상적이네실제로 개인 단계에서나 집단 단계에서나 고민, 논의가 너무 길어지는데 마감은 다가오면 '아 몰라 xx. 대충 하고 자러 가면 안됨?' 라는 심리가 생기고 결국 후회할 결정을 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생각함
  • EXXXXu어쨌든 마지노선은 뚫리지 않았긴 했음 ㅎ
  • 바XXX6"A계획은 즉시 루르를 점령한 후 독일 남부를 돌파해 체코슬로바키아를 비롯한 소협상국과 전선을 연결하는 구상"이거 지도상으로 보면 냉전기 풀다 갭 리버스네 ㅋㅋㅋ
  • 수XX일??? : 마지노선은 남한산성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야
  • 토XX키사실 딱 한군데 뚫리긴 했음1940년 5월 18일 마지노선 좌측방인 라 페르테 요새가 독일 강습공병부대 장교인 알프레드 게르머 공병 중위가 던진 폭탄땜에 화재가 일어났고 이 불길이 요새의 탄약고까지 옮겨붙어서 벙커 강철 문짝이 찢어질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남이로 인해 내부에 유독가스까지 퍼지자 방어하던 병사들이 탈출하려고 했는데프랑스 상부에서 벙커를 사수하라고 지시해 탈출을 막아버려서 107명의 프랑스군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함근데 이 공세는 주 병력 공세 루트인 스당쪽 침공 눈치 못채게 어그로 끌며 간만보는 작전이라 굳이 죽어가면서까지 사수할 필요도 없었다는게 아이러니
  • BXXXX8ㅊㅊ
  • 지XX장피로감 생각도 못했던 발상임 ㄷ국가 정책같은 중요한안건에서는 생각하기힘든일이지만 애초에 그양반들도 사람이니 당연히 지쳐서 대충 결정될가능성도 당연히 있었겠네
  • 로XXX쉬ㅊㅊㅊ
  • 리XXX터기갑을 제대로 운용한 프랑스가수세적으로 변한 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 나XX아전간기가 시작할때는 가장 2머전에 가까웠던 조직인 프랑스군이 2머전이 시작할때는 가장 1머전에 가까운 조직이라니...아 1머전에 가깝지도 않긴 하네 1머전기 프랑스는 기동 살벌하게 해댔으니
  • 방XX슨항공 정찰도, 정밀포격도, 전차도, 무전통신도 없을때 참호에 청년세대가 사라질정도로 꼴아박고 트라우마 생겨서 정작 기동전의 시대가 왔을땐 거북이가 되어버림...
  • 최X이바라바드 선생님 뜬금없지만 이 글에 댓글로 선생님께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선생님께서 예전에 쓰신 '미갤에 프랑스군 글 쓸때 참고하기 좋은 사이트'를 몇달 전 우연히 읽게 되었고 덕분에 BnF 사이트에서 1차사료 원본 스캔본을 검색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저는 군사에 관심이 있지는 않고요, 역사를 전공하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어느 프랑스인이 300년도 전에 쓴 글 원본을 검색해서 볼수 있는게 넘 행복했습니다. 아마 그가 직접 종이위에 쓴 것은 아니고 비서에게 구술시킨 것이겠지만.... 저는 불어를 못하고요, 그래도 30년 전에 고등학교 시절에 불어를 조금 배운 것이 BnF를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좋은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뱃XXXXX롱하필이면 상대한 인간들이 2차대전에서 손꼽히는 명장들이어서
  • 가XXXX젤나름 잘지었고 합리적이었음
  • 고X미이론상 절대방어의 요새 ㄷㄷㄷ
  • 헌XXXXXX리폭격기가 개발만 안됐으면 마지노 요새도 전설이 될수있었을까?
  • 어XXXXXX장아무튼 요세의 존재 의의는 주공을 막고 공세루트를 한정 시킨다라고 하면 마지노선은 밥값은 하긴했음 회전을 내리 다 처져서 그렇지
  • 동XXXX밥집단의 결정이 산으로 가는 경우가 꽤 있지
  • 라X실시발 다이어트 후유증인가 왜 교훈을 교촌으로 봤지?
  • 유XXXX터하 ㅅㅂ 그냥 요새 짓고 끝내죠 하는 게 진짜 현대 관료제 조직에서 보이는 회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거 같네
  • 밥X님프랑스가 수비적으로 간게 1차대전에 프랑스영토가 전장이 되면서 청년층이 싹 갈려버렸는데 독일에 비해 출산율차가 커서 청년 인구수가 역전되었던걸로 기억.그러면서 국력차가 점점 벌어져서 수비적으로 갈수밖에 없었고그리고 미국도 양차대전 치르면서 자국이 전장이 된적이 단한번도 없어서 전쟁후유증이 상대적으로 낮았던거라
  • 보XX가나치가 벨기에로 안돌고 마지노선으로 진격했다면 ? 세계관도 궁금하긴함
  • 증XXXXX마그저 베네룩스를 믿은 죄...
  • 1XXm독일이랑 인구수 차이 때문에 교환비 싸움 가면 절대 못이긴다는 위기감, 국토가 쑥대밭이 된 트라우마, 막대한 인구가 갈려나간 트라우마, 국민들과 정치인들의 압박까지...
  • 펨XXX사근데 독일도 마지노선 뚫을려고 열차포란걸 개발하고 있었음..정작 너무 일찍 끝나서 서부전선에서 쓸 일은 없었지만 동부전선에서 러시아 요새 상대로는 솔솔하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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