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과연 ‘쌀먹’만 했을까? 지도로 보는 주요 재배 곡물 변화

중국은 넓은 국토와 다양한 기후·지형만큼 농업 형태도 지역마다 크게 다르다

오늘날 중국의 주요 작물인 쌀(벼)·밀·옥수수·대두(콩)의 재배 분포를 보면 작물마다 뚜렷한 지역적 차이가 나타난다

사료와 고고식물학 연구, 농업사 논문과 근현대 통계를 토대로 선진시대부터 현대까지 약 3000년에 걸쳐, 오늘날 중국의 성·자치구 경계를 기준으로 각 지역의 주요 재배 곡물 변천사를 살펴봤다
(색은 각 시대·지역에서 대표적이거나 우세했던 재배 곡물을 뜻하며, 다른 곡물을 재배하지 않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1. 선진 (~기원전 221년)


황하 중심의 북중국에서는 조가 가장 중요한 주곡이었고 기장이 함께 재배됐다. 장강(양쯔강) 유역에서는 벼(쌀) 농사가 발달했고, 서북을 통해 맥류(밀·보리)도 유입됐다
핵심: 남도북속(南稻北粟, 남쪽은 벼 북쪽은 조) 구도
2. 진·한 (기원전 221~서기 220년)


북중국은 여전히 조 중심이었지만 밀 재배가 점차 확대됐다. 맷돌과 제분기술의 발달은 밀가루 음식의 확산 기반이 됐고, 남중국에서는 벼농사가 계속 성장했다
핵심: 조의 우세 속에서 밀의 상승 시작
3. 위진남북조·수 (220~618년)


북중국에서는 밀과 밀가루 음식이 더 널리 퍼지며 조·밀 복합 농업이 확대됐다. 남방 개발과 인구 이동으로 장강 유역의 벼농업도 성장했다
핵심: ‘조 대 벼’에서 ‘조·밀 대 벼’로
4. 당·오대 (618~960년)


밀 제분기술과 면식 문화가 발달하면서 화북에서 밀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다만 조도 북방 여러 지역에서 여전히 중요한 곡물이었다
핵심: 조에서 밀로의 주도권 교체가 본격화
5. 송·요·금 (960~1279년)


당·송을 거치며 화북 많은 지역에서 밀이 조를 앞서 주요 주곡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남쪽 벼 농사의 성장과 가뭄에 강하고 빨리 익는 조생종 참파벼(점성도) 확산으로 쌀의 전국적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핵심: 남도북속에서 남미북면(南米北麵, 남쪽은 쌀 북쪽은 밀가루 음식)으로
6. 원·명 (1271~1644년)


북방의 밀, 남방의 쌀이라는 구도가 더욱 뚜렷해졌다. 명 후기에는 옥수수와 고구마가 유입되면서 산지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다.
핵심: 북밀남도의 정착과 신대륙 작물의 등장.
7. 청 (1644~1911년)


옥수수와 고구마가 산지·고원·변경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화북의 밀과 남중국의 벼라는 기본 구도 위에 서남의 옥수수, 동남의 고구마가 중요한 식량으로 더해졌다.
핵심: 쌀·밀 체계에 옥수수·고구마가 결합
8. 20세기 전반 (1912~1949년)


동북과 내몽골에서는 옥수수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다. 조선인 이주민들의 수전 개간과 한랭지 벼농사 확산으로 길림·흑룡강 등지의 근대 벼농사도 크게 성장했다.
핵심: 동북 옥수수권의 성장과 수전 벼농사의 확대.
9. 현대


오늘날에는 화북의 밀·옥수수, 동북의 옥수수·벼, 남중국의 벼, 서남의 벼·옥수수라는 분화가 뚜렷하다. 다만 현대 옥수수는 식량뿐 아니라 사료·산업용 비중도 매우 크다
핵심: 쌀·밀 양대 주식 체계 위에 거대한 옥수수 생산권이 결합

지금 중국도 여전히 북쪽은 밀, 남쪽은 쌀이 주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OECD-FAO 2018 보고서>에서 쌀과 밀 소비량만 합쳐 비교하면 중국은 약 ‘쌀 55 대 밀 45’다
이 자료에 제시된 아시아 국가 가운데서는 인도와 함께 쌀과 밀 소비가 가장 균형적인 편이다
다만 한국과 일본 역시 쌀 중심 농업국이지만, 수입밀과 면·빵류 소비가 커져 두 곡물의 소비 비율은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참고로 한반도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오랫동 '북쪽은 조, 남쪽은 쌀' 체계가 지속됐는데, 논 농사가 많이 발전한 1910년대에도 북부에서는 여전히 조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곡물이었다

세 줄 요약
1. 오랫동안 황하 중심 북중국은 조, 장강 중심 남중국은 쌀(벼)가 중심이었다. ‘남도북속(南稻北粟)’의 시대
2. 당·송을 거치며 북중국에서는 밀이 조를 앞서기 시작했고, 남방 벼농사의 성장으로 쌀의 전국적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남미북면(南米北麵)’의 시대
3. 명·청 이후 옥수수와 고구마가 산간 지방과 변경으로 확산됐고, 현대에는 쌀·밀 양대 주식에 거대한 옥수수 생산이 더해졋다
** 비전문가가 여러 자료 짜깁기해서 쓴 글이니 그냥 재미로만 봐주십시오
🔥 실시간 네티즌 베스트 반응
- 뷔XX즘중국 북부지역에서 거의 유일하게 쌀농사 하는 지역이 만주지역인데 여기서 쌀농사 짓는 사람들 대부분이 조선족이라고 함 역시 한국인은 밥심인 듯
- 비XXX크맞습니다. 본문에도 써놨지만 만주에 논농사 발달한 건 조선 이주민들의 공이죠
- 사X대륙의작물추
- 비XXX크감사합니다!
- 왕X위사실 식량도 식량이지만, 양세법 시행 이후로 전액전납 원칙이 굳어지면서 바꿔먹으려고 상품작물을 키우는 경우도 많아지긴 했지. 그게 힘드니까 결국 미곡을 상품화 한거고이러한 풍조는 명 청대에 조세를 은납화할때도 비슷하게 이이어져서 결국 쌀 생산지가 점점 장강 위로 올라갔던
- 비XXX크정확한 통계는 아니겠지만, 마침 명 말 송응성은 1637년 <천공개물>에서 이미 전국에서 백성을 먹여살리는 곡물의 7할이 쌀이라고 적기도 했죠 ㅎㅎ
- 왕X위예쓰 ㅋㅋ아마 그 먹여살린다는게 밥도 밥이지만 결국 세금으로 낼 은으로 바꿔먹을 수단 중 하나가 미곡이었으니
- 사XXXXX짐삼국지 인물들 거의 다 조밥 먹었을 확률 높다는거네
- 비XXX크조위는 조+밀, 손오는 벼, 촉한은 벼+밀+조가 위주였을 것 같습니다. 물론 위에서도 상류층은 쌀을 먹었겠습니다만
- 평XX놈ㅊㅊ
- 그XXXX천(보)리선족과 쌀숭이의 대립은 기원전 중국에도 있었구나
- 비XXX크ㅋㅋㅋㅋㅋㅋㅋㅋ
- 비XX스쌀먹이 아니라 밀먹인가여
- 비XXX크북중국은 그런 셈이지요 ㅎㅎ
- 동XXXXX리만두먹어야지
- 실XXXXXX다쌀은 도정만 하면 부드럽고 먹기 좋은데 밀은 도정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유럽/북아프리카 쪽에서는 갈아서 빵으로 만들어 먹었는데 중국은 뭐로 먹었지? 국수? 만두?
- 딴X리강터우. 개화기때 쿨리들이 먹던.퍽퍽하고 딱딱한 호떡인데 안에 흑설탕 대신 짠지나 채소찌그래기 들어가 있는.국수나 만두는 둘 다 고급음식임.근대 이후로나 서민들도 쉽게 먹을 수 있게 된거고.
- 마XXX즈무협에서 먹는 한닢짜리 국수는 구라였단말이가
- 세XXX스예로부터 서민이 밀가루 먹는 법은 대충 반죽해서 오븐처럼 열로 익히는 거였음이러면 윗댓처럼 뻑뻑하고 납작한 호떡 형태로 수렴 진화함
- FXXXXXXt화북지역에서는 주로 만터우로 많이 먹음. 밀가루 반죽 발효 해서 쩌낸 찐빵임
- 비XXX크맷돌이 도입되기 이전엔 조처럼 밥으로 지어 먹는데 밀밥이 맛대가리가 없어서 하층민들이나 먹었던 편이죠이후론 만두나 면 등으로 먹었는데, 면 자체는 기장으로 처음 만들어 먹었던 지라 역사 자체는 밀 식문화보다 깁니다
- 눈XX다남쪽은 꾸준히 쌀 강세였고 북쪽은 조가 밀한테 점점 밀리다가 추워서 밀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은 옥수수한테 막타 당한건가
- 비XXX크옥수수 지역도 주곡은 밀이나 조, 기장을 같이 키워서 같이 먹고 있기는 하지요
- VXXXXS교과서에서도 조, 기장 같은거 배웠지만그게 어떤 작물인지 찾아 본적도 없네
- 이XXX편급식시간에 기장밥, 조밥 개자주 나와서 다 먹어봤을테니 아마 대충 먹다보면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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