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히 정신나간 독소전쟁 전투 TOP 10.JPG
10위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
1944년 1월 24일부터 2월 16일까지 우크라이나의 체르카시와 코르순에서 벌어진 전투.
독일군의 처절한 탈출.
드네르프강 기슭에 독일군 2개 군단이 포위되었다.
진흙탕과 눈보라 속에서 퇴로가 끊긴 독일군이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근접 학살전이 벌어졌다.
소련 병력 : 약 336,700명 // 사상자 : 80,188명 // 사상률 : 23.8%
독일 병력 : 약 14만명 // 사상자 : 55,000명 // 사상률 : 39.2%
9위
<부다페스트 공방전>
1944년 12월 29일부터 1945년 2월 13일까지 소련과의 단독 휴전을 추진하던 헝가리 왕국과 이를 저지하던 나치 독일, 그리고 소련 사이에 벌어진 격전이다.
헝가리 수도를 둘러싼 50일간의 처절한 포위전.
히틀러는 이곳을 사수하라고 고집했고, 다뉴브강을 낀 험난한 지형과 도심 요새화로 인해 공격측인 소련군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좁은 시가전과 독일의 끈질긴 반격 시도.
소련 병력 : 177,000명 // 사상자 : 약 16만명 // 사상률 : 90%
추축국 병력 : 79,000명 // 사상자 : 약 4만명 // 사상률 : 50%
8위
<베를린 전투>
제2차 세계 대전의 막바지였던 1945년 5월 소련군과 폴란드 임시정부 산하 동부폴란드군이 나치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함락시킨 전투이다.
나치 독일의 항복을 받아낸 종결전.
독일은 노인과 아이들(국민돌격대)까지 동원해 마지막 저항을 했고, 소련은 승리 점령을 서두르느라 전술적 무리수를 많이 뒀다.
젤로 고지에서의 정면 돌파 피해와 시내 건물 하나하나를 수색하는 극도의 시가전.
소련 병력 : 약 250만명 // 사상자 : 361,367명 // 사상률 : 14%
독일 병력 : 766,750명 // 사상자 : 약 32만명 // 사상률 : 41%
7위
<쿠르스크 전투>
1943년 7월 4일~1943년 8월 23일까지 쿠르스크 일대에서 벌어진 소련과 나치 독일 간의 전투이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갑전. 독일의 마지막 대규모 공세.
소련군이 이미 독일의 공격 계획을 알고 수 미터 두께의 방어선(지뢰밭, 대전차포)을 겹겹이 쌓았다.
전차 수천 대가 영거리에서 들이받는 대격돌과 대규모 공중전.
소련 병력 : 약 250만명 // 사상자 : 863,303명 // 사상률 : 34%
독일 병력 : 약 940,900 // 사상자 : 184,555명 // 사상률 : 19%
6위
<드네르프강 전투>
1943년 8월 26일부터 1943년 12월 23일까지 벌어진 전투.
우크라이나 탈환을 위한 거대 강 도하 작전.
강폭이 3km에 달하는 드네프르 강을 도하 장비도 부족한 상태에서 맨몸으로 건너야 했다. 독일은 이를 '동부 방벽'이라며 사수했다.
강을 건너는 중 쏟아지는 독일,루마니아군 화력에 의한 피해.
소련 병력 : 약 2,650,000명 // 사상자 : 150만명 // 사상률 : 56%
추축국 병력 : 약 1,250,000명 // 사상자 : 약 40만명 // 사상률 :32%
5위
<바그라티온 작전>
소련군이 독소전쟁 발발 정확히 3년 만인 1944년 6월 22일 벨로루시 일대의 독일군 중부집단군을 상대로 실시한 대반격 작전.
소련의 대반격으로 독일 중부집단군이 지도에서 사라졌다.
소련의 완벽한 기만전술에 속은 독일은 주력군을 엉뚱한 곳에 두었고, 그 사이 소련군 250만 명이 전선을 찢고 들어왔다.
포위망에 갇힌 독일 사단들이 후퇴 허가를 받지 못해 제자리에서 전멸.
소련 병력 : 약 250만명 // 사상자 : 약 77만명 // 사상률 : 30%
독일 병력 : 약 85만명 // 사상자 : 약 45만명 // 사상률 : 52%
4위
<르제프 전투>
1942년 1월부터 1943년 3월까지 르제프 및 시쵸프카 전역에서 벌어진 약 14개월에 걸친 거대한 공방전이다.
별칭 '르제프 고기 분쇄기'. 모스크바 인근 돌출부를 두고 벌인 소모전.
독일의 방어 명장 발터 모델이 구축한 철저한 방어선에 소련군 지휘부가 무리한 정면 돌격을 반복했다
요새화된 진지에 대한 무지성 돌격과 좁은 구역에서의 화력 집중으로 대참사 발생.
소련 병력 : 약 210만명 // 사상자 : 약 120만명 // 사상률 : 57%
독일 병력 : 약 70만명 // 사상자 : 약 40만명 // 사상률 : 57%
3위
<모스크바 공방전>
1941년 10월 2일부터 1942년 1월 7일까지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 근교에서 나치 독일과 소련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 최종 목표였던 수도 점령 시도가 좌절된 전투.
독일은 보급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에서 영하 40도의 혹한과 진흙탕(라스푸티차)을 만났고, 소련은 극동에서 불러온 동계 장비 완비 정예병을 투입해 배수진을 쳤다.
준비되지 않은 추위로 인한 독일군의 동사, 소련의 끊임없는 파상공세.
소련 병력 : 1,252,591명 // 사상자 : 1,029,234명 // 사상률 : 82%
독일 병력 : 1,929,406명 // 사상자 : 581,159명 // 사상률 : 30%
2위
<레닌그라드 공방전>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27일까지 소련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그 근방에서 871일 동안 나치 독일, 핀란드와 소련 간에 벌어진 전투이다.
872일간 이어진 인류 최악의 봉쇄전.
점령 대신 '아사(餓死)'를 택한 독일의 봉쇄 전략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지옥이 되었다. 시민들은 가죽 구두를 끓여 먹거나 인육을 먹는 처참한 상황에서도 버텼다.
소련 병력 : 측정불가 // 사상자 : 약 350만명 // 사상률: 측정불가
추축국 병력 : 725,000명 // 사상자 : 579,958명 // 사상률 : 80%
1위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2년 8월부터 1943년 2월 2일까지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일대에서 벌어진 소련군과 독일 국방군 간의 대규모 혈전.
전쟁의 향방을 바꾼 분수령으로 독일 제6군이 통째로 소멸했다.
사상 초유의 시가전으로 건물 하나를 두고 층마다 주인이 바뀌는 처절한 근접전이 벌어졌다. 포위망에 갇힌 독일군의 아사 및 동사, 소련군의 압도적 역포위.
소련 병력 : 약 170만명 // 사상자 : 1,347,214명 // 사상률 : 80%
추축국 병력 : 약 100만명 // 사상자 : 약 85만명 // 사상률 : 85%
포위당한 독일 제6군 40만명은 사상률 100% !!!!
🔥 실시간 네티즌 베스트 반응
- ㅇㅇ진짜 이걸 기획한자식는 역사속 천재중에 하나네
- ㅇㅇ독일 국방군이 ppsh 노획했나보네 ㅋㅋㅋ
- 수류탄이야이렇게 마이 죽었는데 대체 나라 복구 어케함???
- 사이바_모모이소련은 이기는전투에서도 킬뎃비 독일한테 처발리노
- ㅇㅇ캐삭빵 - dc App
- ㅇㅇ태평양도 해주
- ㅇㅇ40만 올데스는 좀 무섭노;
- ㅇㅇ히틀러가 딴생각 안하고 모스크바 닥돌했으면 어땠을까
- ㅇㅇ교환비는 독일이 잘가져간 경우가 더 많은데 역시 전쟁은 인구빨이노
- ㅇㅇ독일입장에서도 무리하게 진행한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소련도 사활을 걸고 벼랑끝까지 갔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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