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는 무슨 뜻일까?
세 줄 요약 :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는 '현재 자리에서 노오력해라' 라고 많이 쓰이는데,
베르세르크 작품 내에서 해당 대사는 그런 식으로 쓰였던 게 전혀 아님
'공포에서 도망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기 운명을 개척해라' 라는 뜻임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는 말은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거야
그리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해당 대사가 만화계의 고전으로 취급되는
'베르세르크' 의 대사라는 것도 알 거야
다만, 고전이라는 게
'다들 좋은 작품이라는 건 알지만 지금 읽지는 않는 작품' 이다보니
해당 대사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오해를 하는 거 같더라고
위의 니체의 일침과 결합하여
'하기 싫은 일에서 도망이나 치는 놈팽이들은
어디에서나 환영받지 못할 거다'
이런 식으로 '불평 가지지 말고 노오력 해라' 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꽤 많은데,
그렇게 해석하는 건 문장만 보고 뉘앙스를 잘못 파악한 거야
막말로 기독교인들이 가게 개업하면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라고
축하의 의미로 욥기의 저 구절을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막상 욥기를 읽어보면 저건 욥을 축복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
'니가 니 인생 잘못 없다고 하는데, 니 인생 돌이켜 봐라' 라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욥을 맥이는 의도로 쓴 말이었거든
이런 것처럼 단지 문장이 간지난다고
원작을 읽지 않고 해당 문장을 갖다대면 오해가 생길 수 밖에 없어
'도망친 곳에는 낙원은 없다' 라고 하기엔
주인공 가츠야말로 평생 도망칠 수 밖에 없는 신세거든
어릴 때는 양아버지라는 인간이
'내 인생이 파탄난 게 가츠 때문이다!' 라며 온갖 학대를 저질렀고
아버지의 부하는 어린 가츠를 상대로
'등짝을 보자' 라며 성폭행을 저질렀으며
그런 상황에서 양아버지는 피해자인 가츠 편이 아니라
오히려 가츠가 원흉이라고 가츠를 죽이려 하다가
이를 막기 위해 가츠가 휘두른 검에 죽어버렸거든
그리고 가츠는 아버지를 살해한 패륜아로 오명을 쓰고
세상을 방랑하며 온갖 험한 꼴을 다 보고
매의 단 단장 그리피스를 따랐지만
그리피스는 가츠를 배신하고
힘을 얻기 위해 가츠를 비롯한 매의 단 단원들을 산제물로 바쳤거든
이 과정에서 가츠는 가까스로 도망쳐 나왔지만
'제물의 낙인' 이 찍혀 있기에 죽을 때까지
온갖 악령들과 사도들을 피해 도망칠 수 밖에 없는 신세야
그런 상황에서 가츠가
'도망간 곳에 낙원은 없다' 라고 말한 건
불만 갖지 말고 도망치지 마라고 하는 의미가 아니지
특히나 가츠가 저 말을 했던 건
온갖 험한 일을 경험한 질이라는 소녀가
가츠에게 의지하겠다고 애원했기에 한 소리였는데
베르세르크 세계관 속에서
질은 저기 남아서 '노오력' 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계 곳곳에 만연한 폭력에 즈려 밟힐 수 밖에 없는 신세였어
그렇기에 '현 상황이 아무리 꼬와도 여기서 발 뻗고 버텨라'
이런 뉘앙스로 말했다면 질이 처한 상황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소리였겠지
사실 작가가 작품을 위해 자기 자신을 갈아 넣다가
이미 죽어버렸기에 작가가 해당 구절의 의미를 설명해 줄 순 없겠지만
베르세르크의 작품 주제가 '온갖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 찬가' 이고
질과 비슷한 처지의 루카가 했던 대사를 보면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살아남으려 하는 것과 공포에서 도망치는 것은 다르다'
'공포에 자기 자신을 잊은채 흘러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움직인 사람들이 살아남는다'
'신은 사람에게 감당하기 힘든 불운을 내리지만,
그래도 인간이 스스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 정도의 여유는 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라는 문장의 의미가
'도망치지 말고 싫은 일을 억지로 하려는 노오력' 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공포에 짓눌려 도망치지 말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라'
라고 '자기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거다' 라는 적극성을 강조하는 거라 봐야지
위의 질의 결의도 그렇고
아까 루카가 덧붙였던
'신은 사람에게 감당하기 힘든 불운을 내리지만,
그래도 인간이 스스로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 정도의 여유는 준다' 도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 라는 진인사대천명의 뜻이잖아
베르세르크 작품 내에서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는
그 말을 했던 가츠가 '인과율에 의해 정해진 운명에 저항하는 자' 라는 걸 생각하면
'노오력 하면서 현 자리를 고수해라' 가 아니라
'공포로부터 도망치지 말고 자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라'
이 관점에서 해석해야 작품 주제 의식에 맞아
그 관점에서 베르세르크를 읽지 않았을 거 같은 분들이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라며
'노오력' 만 강조하는 의미로 저 문장을 들먹이는 게 씁쓸할 따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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