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군의 전쟁계획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자

프랑스군은 슐리펜 계획이 있었던 독일군과 달리 1차대전을 작전계획 없이 시작했음
이에 대한 반성인지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지나 T계획, 그 다음은 P계획이라는 작계를 수립해 1923년까지 유지함
여기서 T는 Transitoire(과도기)의 T이고 P는 Provisoire(임시)의 P임
구상은 단순함
프랑스군을 북부, 중앙, 남부 세 집단으로 나누고 라인군과 합류한 뒤 루르를 점령

이어 라인강을 끼고 독일군의 공세를 방어하며 마인츠를 통해 도하
독일군을 양단하고 45개 보병사단이 베를린으로 달려가는 거임
마인츠는 지도에 동그라미로 표시해놓은 저곳임
대혁명 이후 프랑스군이 독일을 공격할 때마다 사용한 전통적인 침공 루트를 그대로 가져온 거임
이후 복무기간이 18개월로 단축되자 P(M)계획으로 수정되었지만 내용은 본질적으로 똑같음
P(M)계획까지가 대략적인 구상이라면, 1924년에 등장한 A계획은 본격적인 작계라고 할 수 있음
이것도 일단 루르를 점령하고, 북동쪽과 북쪽에서 오는 공격을 방어하며 독일 남부를 돌파
그렇게 체코슬로바키아를 비롯한 소협상국과 전선을 연결하는 구상임

참고로 소협상국은 얘네들을 뜻함
당연히 폴란드의 참전도 염두했음
총참모부는 A계획에서 70개 사단으로 공격하는 동안 20개 사단으로 독일군의 반격으로부터 병참선을 지킬 생각이었음
하지만 이 작계는 곧 수정되는데

아직 프랑스군에 영향력이 강했던 페르디낭 포슈가 비판했기 때문임
포슈의 비판점은 이러함
1. 어떻게 기동할지 너무 단정지어놨음
2. 베를린 점령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것이 너무 비공세주의적임

프랑스군은 독일 남부 돌파 구상을 여전히 유지했지만, 포슈의 비판을 반영하여
베를린에 가깝도록 루르에서 마인츠에 이르는 공간에 집중될 병력이 어떻게 기동할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결정하기로 함

A계획은 프랑스군이 1차대전 말에 진행했던 작전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음
따라서 전통적인 형태를 지녔고, 극도로 공세주의적인 성격임
당시 프랑스군의 전력, 프랑스군이 보유한 군사장비, 그 성능에 완벽하게 부합해 딱히 흠잡을 점이 없다는 평가를 받음
당시엔 벨기에가 중립으로 선회하기 전이었으므로 벨기에군의 합류를 전제로 하고 있음
하지만 영국군의 합류는 가능성만 열어둠

그리고 A bis계획임
그럼 뭐가 바뀌었냐면
당시 프랑스가 시리아와 모로코에 최대 23만명에 달하는 병력을 투입하는 바람에
병력 집중이 완료될 때까지 독일군을 라인강에서 막아내는 걸 포기했음
A bis계획은 1929년 4월까지 유지됨

여담으로, A bis계획까지는 최대한 빠르게 기동할 수 있는 부대와 신속한 화력지원 수단을 요구하는 작계이기 때문에
쭉 유지되었더라면 프랑스군의 무기 개발이 독일군과 비슷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도 있음
1919년 2월 24일에 총사령부에서 서명한 문서인 Considérations générales sur l’artillerie et les chars de l’avenir는
보병지원용 경전차, 도로와 개활지에서 높은 기동력을 발휘할 중형전차, 저항 극복 및 대전차전을 위한 중전차, 지휘전차, 관측전차, 보급전차, 자주포, 기계화보병, 근접항공지원용 항공기, 기갑부대와 동일한 기동력을 갖춘 정비부대
기동력보다 충격력에 중점을 두긴 했어도 2차대전 기갑사단의 구성요소를 거의 다 언급하여 윤곽을 자세히 그려낼 뿐더러
이러한 기계화부대를 결정적 전투가 일어날 지점에 진출시키는 능력이 미래전의 핵심이라고 언급하기 때문에
근거가 충분한 예상임

다음엔 B계획이 등장함
이건 A계획과 정반대로 철저한 방어주의 계획임
라인강으로 쳐들어가긴 커녕, 개전 즉시 라인군이 프랑스 국경으로 후퇴해 방어선에 합류하기로 했음
(참고로 라인군은 1930년에 해체)
복무기간이 1년으로 줄어들며 전력이 더더욱 약화되었고
당시 프랑스군에서 복무기간 단축이 기동전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졌음
외교정책, 국방정책 변화도 이유였는데 이건 정치 이야기니까 생략하고
특징은 처음으로 이탈리아가 독일 편으로 참전할 가능성을 열어둬 양면전선을 대비했다는 것임
B계획은 1931년 5월까지 유지됨
다음은 C계획임
이것도 철저한 방어주의 계획이고,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를 통해 침공하는 독일군을 저지하는 게 목적임

이유는 마지노선 때문에 독일군이 무조건 우회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임
이탈리아와 갈수록 사이가 안좋아지고 있었으니 양면전선을 상정한 건 그대로
1933년 4월까지 유지됨
다음은 1938년 1월까지 D계획과 그 수정안인 D bis계획이 나옴
이 계획은 8번이나 수정되었음
D계획의 지침은 이러함
'프랑스군은 동원 4일차에 메지에르에서 바젤에 이르는 구역에서 적에게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방어선 구축에 나서야 하며, 메지에르 북쪽으로는 국토를 방어하는 튼튼한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

즉 일단 이렇게 방어선을 만들고

벨기에로 진격할지
아니면 벨기에는 냅두고 위 짤처럼 할지 상황에 따라 정하기로 했음

또 D계획의 핵심 내용 두 가지는 이러함
1. 롱기용에서 바젤까지 이르는 요새선 및 알프스 지역에서 한 걸음도 후퇴하지 않고 국토의 완전성을 보장할 것
2. 적이 요새선의 양익, 즉 벨기에와 스위스로 강행할지도 모르는 우회기동에 대비할 것
롱기용은 위 지도에서 빨간색 선 시작점임
참고로 스당은 롱기용에서 좀더 왼쪽에 있음
마지막으로 1939년 9월까지 유지되고, 폴란드 침공에 따라 실제로 실행된 E계획이 있었음
그러므로 조금 더 자세히 보겠음
E계획은 77개 보병사단, 2개 경기계화사단, 3개 기병사단, 7개 기병여단으로 구성된 24개 군단(기병군단 1개 포함)을 동원
이러한 전력의 핵심은 당연히 대독일 전선에 배치되었지만
여전히 양면전선에 대비해 알프스와 코르시카와 튀니지에 분산되었음
제1, 2, 3, 4, 5, 8야전군과 야전군 분견대(야전군보다 약간 작음)가 됭케르크에서 쥐라까지 방어함
(쥐라는 바젤 밑에 있음. 독일군의 스위스 침공을 염두한 것)
제7야전군은 랭스에 예비대로 배치되어 벨기에로든 스위스로든 이동할 수 있었음
프랑스군은 E계획을 F계획으로 대체할 생각이었는데
F계획은 기갑사단과 2개 신설 보병사단 배치를 추가로 다루는 계획이 될 예정이었음

어쨌든 A bis계획 이후로는 쭉 방어주의적 계획이었음을 알 수 있음
그러나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는데, B계획부터는 작전계획이 아니라 단순한 집중계획(plan de concentration)임
따라서 총사령관은 강력한 재량권으로 B~E계획 실행 이후 공격해도 상관 없었음
실제로 프랑스군은 E계획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르로 진격하는 작계인 R가정(Hypothèse)을 따로 수립했음
R가정의 목표는 독일군이 양면전선을 끝내기 위해 폴란드를 집중공격할 경우, 이를 방해하기 위해 공격하는 것임
R가정은 S가정으로 수정된 후 실제로 실행됨

그러고 일어난 일이 가짜전쟁임
따라서 프랑스군의 전쟁계획은 기본적으로 방어 목적의 집중계획에 불과했으나
총사령관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도록 '가정'이라는 명칭의 작계를 따로 두는 식이었음

그리고 바로 그 총사령관인 가믈랭은 방어를 유지하기로
더 정확히 말해 일단 맞아준 다음 공격하는 선방어 후역습 계획을 세워서
S가정을 실행하고 가짜전쟁을 벌이더니 선방어에 실패하고 패배함
🔥 실시간 네티즌 베스트 반응
- EXXXXt수많은 계획이 있었으나 결국 "reddition" 해버린...
- 비X아다음엔 B계획이 등장함이건 A계획과 정반대로 철저한 방어주의 계획임라인강으로 쳐들어가긴 커녕, 개전 즉시 라인군이 프랑스 국경으로 후퇴해 방어선에 합류하기로 했음(참고로 라인군은 1930년에 해체)복무기간이 1년으로 줄어들며 전력이 더더욱 약화되었고당시 프랑스군에서 복무기간 단축이 기동전에 대한 회의감으로 이어졌음아...
- 호X루프랑스는 엘랑이 필요해요~이런 국가는 싸울 의지가 없어요~그들은 순간의 엘랑으로 빠른 항복이 필요합니다
- bXXXXXd본인이 주로 참고하는 출처이자 프랑스군 예비역 대령이며 군사사학자인 미셸 고야는 프랑스 침공에 대해프랑스군이 패배한 이유인 온갖 약점과 실수를 설명한 후,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승리는 가능했으나, 간절히 원하지는 않았을 뿐이다." 라고 평가함이 글의 주요 출처인 프랑스 육군 중장 앙드레 부라쇼 또한 프랑스는 싸울 의지가 없었다고 평가함
- 호X루나폴레옹 폐위 후 엘랑의 전투력이 박살남 ㅋㅋㅋㅋ
- 갓XXXX#오히려 국토 보전 하고 자유프랑스가 활약할 계기가 되었으니 좋은게 좋은거 아닐까?
- 바XXX6좋기는 시발 그냥 뮌헨때 영프가 좆까 하고 죽빵 갈겼으면 이 준비태세로는 절대 전쟁 못 한다고 쿠데타 터뜨릴 생각 가득이었던 독일군이 전쟁 시작하자마자 히틀러 끌어내리고 나치 망하는 걸로 끝이었음 ㅋㅋㅋ
- 비X아가짜 전쟁 시기 프랑스 군인들이 고향에 보낸 편지들을 보면 '너무나도 고요한 전선', '쥐죽은 듯한 독일군'들이 뭘 꾸미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더욱 불안하다는 식의 서술이 많다. 여러모로 프랑스인들은 1차 대전에서의 엄청난 피해 때문에 전쟁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심했다. ㄷㄷ
- 손X1차대전 격전지가 거의다프랑스땅이었으니
- 필XX랑ㅊㅊ
- 비XXX크소협상국 은근히 영향력 있는 게 국제연맹 비상임이사국 TO 1석 고정임. 셋이서 돌려 먹음
- cXXXXXX1프랑스는 쿠데타로인해서 정부의 군불신이 가장큰문제아니였나? 상비군과 전문화된 장교양성을 늘리지않고 대규모 국민징집병으로 구성할려고 마지노선 계획한것도 쿠데타 방비차원에서 육군억제한게 가장큰 패착으로보이고 그만큼 육군 사기도 쳐밖히고 일찍포기해버렸으니. 지들 업보지만
- 덴XXX움폴란드 유기하고 선방어 후역습 계획 -> 선방어 실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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