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텐간 윤덕영/순정효황후는 포도임

이 새끼 쉴드치는 글 아님
천하의 개자식 맞음



윤덕영의 악행과 순정 효황후의 의로운 저항으로 유명한 치마폭에 숨긴 옥새
꺼무에도 적혀있는 내용

순정효황후의 의협심과
윤덕영의 악랄함을 보여주는 일화이지만
점점 살이 붙다가 역사가 되어버린 신화일뿐이고
매천야록이나 순종실록같은 당시 사료들에선 그 내용을 찾을 수가 없음

먼저 정교라는 학자가 집필한 1864년부터 1910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역사서로서 집필한 대한계년사를 살펴보자
정교는 독립협회나 만민공동회에서 활동할 정도로 민족의식이 대단한 사람이었음
이 책 9권에는 한일병합 당일날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음
'해질 무렵, 통감부의 모든 관리와 이완용 등 각 대신, 시종원 경 윤덕영,중추원 의장 김윤식이 창덕궁에 모였다. 오후 6시쯤, 이완용과 윤덕영이 두 조칙을 내놓고 옥새를 찍으라고 폐하를 몰아세웠다. 폐하께서는 어찌할지를 몰라하셨다. 김윤식만이 유독 나서서 "생각건데, 우리 한국은 폐하 한 분의 나라가 아닙니다. 다른 나라 사람에게 양여하는 것을 가볍게 논의해서는 안됩니다" 라고 아뢰었다. 이완용과 윤덕영은 일본인의 지시를 받고 곧바로 김윤식과 여러 사람들을 쫓아냈다. 마침내 옥새를 가져다 문서에 찍었다. 그때 일본인들이 옥새를 통감부로 가져갔다.'
일단 이 기록에서 보이는 오류로 실제로는
어전 회의가 열린 시각은 오후 2시경인데 해질 무렵이라고 써놨음
아마 집필자인 정교 본인이 그 자리에 없었으니 시간을 틀린거라 생각됨
다만 그 오류는 차치하고 순정 효황후가 옥새를 숨긴
엄청난 사건을 정교 정도 되는 사람이 안 쓸리가 없을텐데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이완용과 윤덕영이 강압적인 분위기로 옥새를 가져다 찍었다 정도

다음은 임시정부 기관지 '한민'을 살펴보자
1936년 8월 29일 한민은 경술국치를 기념하는 특별기사를 실었음

'완용은 합방조서를 제 손으로 치었으나, 옥새를 도적할 길이 없으매, 저 같이 개창자를 가진 황후의 숙부 윤덕영을 시켜 이 일을 실행케했다. 이 부탁을 받은 덕영은 황제가 곤히 잠든 틈에 목적을 달하려고 하였다. 놀라 깨인 황후는 덕영을 꾸짖었으나, 그놈은 기탄없이 황후를 넘어트리고 필경 옥새를 빼앗아 완용을 통하여 데라우치에게 전하였다. 덕영은 이 연유로 자작에 봉해지고 특사금 40만원을 받았다'
당연히 역사의 사실적 팩트도 중요하지만
한민은 임시정부의 기관지이고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였기 때문에
대중의 독립의지와 민족 의식을 고무,고취시키는 활동이 더 중요했음

그래서 대충의 흐름은 대한계년사와 한민의 서술이 동일하지만
한민에선 과장된 문체로 '잠든 황제 부부로부터 옥새를 빼앗았다'라는 이야기가 붙어있음
그렇다면 한민은 어떤 자료를 인용한걸까?
한민 기사 마지막에 은사금 40만원이라는 내용을 보면 대충 그 출처를 알 수 있음

역시 임정 요인이자 사학자인 박은식이 1915년 상해에서 쓴 한국통사에 '비슷한' 내용이 나옴
'이완용 등이 나라를 일본에게 이양한다는 조칙을 사사로이 만들어 황후의 숙부 윤덕영에게 옥새를 찍게 하였으니, 황제는 흐느끼면서 승낙하지 않았으며 황후 또한 통곡을 그치지 않았다. 윤덕영은 황후에게 통곡을 그치라하면서 "이러면 일족이 모두 살해되는 화가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윤덕영은 순종이 취침에 들어간 틈을 타서 몰래 옥새를 찍어가지고 이완용에게 주었으며, 이완용은 그것을 데라우치에게 주었다. 그런 까닭으로 일본 정부는 윤덕영을 자작에 봉하고 특별 은사금 40만원을 주었다.'
한국통사가 40만원썰이 나오는 첫 문헌이라 아마 이걸 인용한거라 추정됨

근데 이 글에선 또 이야기가 다르다
여기선 윤덕영이 이완용에게 옥새 자체를 준 게 아니라
옥새를 찍은 조칙 서류를 줬다고 써있음

당시에는 이런 스토리텔링스러운 기록들이 흔했음
헤이그 특사로 파견된 이준이 결국 분에 못이겨 현지에서
할복을 했다거나 할복을 하고 그 창자를 꺼내 회의장 벽에 집어던졌다는 이야기는
당시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려는 언론들의 과장된 오보들이었음

순정효황후와 윤덕영의 이야기 역시 이런 목적과 과정을 통해
점점 살이 붙다가 1966년까지 살아있던 그녀가 죽은 뒤 신화로서 만들어짐
치마폭 옥새가 최초로 문헌에 등장하는 건 1966년 2월 4일 동아일보 기사임

여기서 이 이야기가 최초로 등장하는데

그로부터 몇 일 후 2월 8일 경향신문 역시
순정효황후의 일생이라는 연재물을 연재함
이 기사는 순정효황후를 수행했던 김명길 상궁을 인터뷰해 쓴 기사임

위쪽 네모 박스가 김명길 상궁의 인터뷰 내용
그런데 '김상궁이 전하는 합병당시의 황후 모습이었다.' 뒤에
'순정효황후는 합병조약을 맺던날 옥쇄를 움켜쥐고 내놓지 않으려했다는 얘기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라는 말이 붙어있음

(슬슬 제미나이 정신이 나가고 있다)
분명 김명길 상궁은 인터뷰에서 '그 날 옥새가 없어져서 궁궐 안이 소란스러웠고 슬퍼하는 상궁들을 순정효황후가 울지말라고 달랬던 모습은 매우 의연해보였다' 정도로 이야기했는데 글을 쓴 기자 양반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식의 워딩을 쓰며 몇 일 전 동아일보 기사를 인용한거임

그리고 또 몇 일 후인 2월 11일
이번엔 동아일보가 아예 김명길 상궁의 육성증언을 '최후의 왕조 윤후 일대기'라는 이름으로 연재함

여기선 또 효황후의 치마폭 이야기가 빠져있음
당연함 김명길 상궁 본인은 치마폭 이야기를 전혀 안하니까
육성 증언 기사에는 그 이야기를 넣을 수 없었던거임

4개월 뒤 김명길 본인이 시사 잡지 '신동아'에 순정효황후에 대한 회고록을 연재함
이 회고록에서 당시 회의 상황을 꽤 자세하게 묘사하는데
그럼에도 치마폭 이야기는 단 한글자도 찾아볼 수 없음

이 회고록이 재밌는 건 병합 후 궁내 생활에 대한 묘사도 담겨 있는데
궁내 왕과 왕비의 칭호는 제한되었지만 일본 궁내성 예산을 받아
궁내 생활은 더 호사스러워졌으며 궁궐사람들은
온 조선을 착취하기 위해 마치 일제의 앞잡이처럼 굴었다 라고 신랄하게 까고 있음

아 그리고 특사금 40만원 말인데

윤덕영은 15만원 받은 이완용보다 적은 5만원받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윤덕영 개자식 맞으니까
깔땐 까더라도 팩트로 까자ㅇㅇ
🔥 실시간 네티즌 베스트 반응
- 탈XXXX5썬김은 애초에 비전공자임 역사를 정식으로 배운적이 없음전문성가지고 맨날 욕먹던 설민석이 저 양반보다는 천배만배 전문성있음ㅋㅋㅋ적어도 설민석은 오랜기간 수험생들 대상으로 한국사 강의를 실제로 했었고 강사시절에는 별 문제 없었음 방송나와서 세계사 중국사 다 건드리다가 그 사단이 난거지 반면에 썬킴은 역사스토리텔러(?)라는 신기한 직업을 하기전에는 영어강사 한게 커리어의 전부임
- 윤X짱유튜브 나오는 역사 스토리텔러들은 너무 주관적 해석이랑 각색을 많이 하는거 같아
- 아XX!이 양반 말 다 믿으면 안됨이토 히로부미는 저때 살아있지도 않았자나
- MXXXn역사스토리텔러 (역사 전공자 아님)
- 시XXX원ㅇㅇ 1년전에 안중근 의사한테 사살당했으니ㅋㅋ
- MXA팩트추
- 시XXX원저 50만원 받은 윤택영은 누구여
- 의X족순종 장인 윤택영
- 시XXX원저 사람 동생이었네ㅅㅂㅋㅋㅋㅋ
- 펩XX로설민석과같다
- MXXXn설민석이 저 분보다 더 전문성 있음
- 분XXXX정어오어어어???
- 앙X크아아악
- 밤XX타썬킴 원래 저런 사람임
- DXXX9썬킴 헛소리 존나 많이함
- 캉XX르과거나 지금이나 포도가 판을 치는구나 ㅋㅋ지금도 가짜 뉴스 같은거 먼 미래에는 진실이 될 수있다
- 포XXXXXX용개씹 포도글 이엇네 씹킴인지 개는 사과함?
- 한XXXXX승설마ㅋㅋ
- 눈XX다어제도 포텐보면 몇몇사람들이 친일파 의사를 이완용 절친으로까지 만들어버리더만 ㅋㅋㅋ친일파들은 팩트로만 조져도 충분히 조질 수 있다
- 생XXXXX지정보추
- 강X치삼국지 화흠이 생각나는 썰이군
- 뉴X새삼 역사학자들 대단하다 진짜거의 수사하듯이 사료 이것저것 취합해서 봐야하네 ㄷㄷ
- 품XX단전공자라 하더라도 자기가 실제로 공부한 영역이 아니면 겸손해야 하는데 ㅋㅋ
- 짐XXX리근데 윤덕영씨 모친이 낳으실때 길게 조이셨나 가래떡같이 나왔네 두상이
- 아XXX츠썬킴은 재밌게 듣고 보고 걍 흘림ㅋㅋㅋ 신기한게 잘 남지도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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