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다는 이유로 지도에서 지워진 도시

충북 제천은 구한말 의병 운동, 의병 전쟁이 가장 격렬하게 일어난 ‘의병의 고장’ 중 하나임.

1895년 을미의병을 시작으로 1905년 을사의병, 1907년 정미의병에 이르기까지 비타협적인 항일 투쟁을 줄기차게 이어갔으며, 그 대가로 일제로부터 한반도 내에서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수준의 보복과 탄압을 받았던 곳 중 하나.


당시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분개하여 제천에서는 유인석을 중심으로 하는 대규모 의병(호좌의진)이 일어나고 충주성을 점령하는 등의 실적을 올렸음. 이 과정에서 안승우, 홍사구 등 수많은 인물이 남산전투 등에서 화승총을 들고 관군 및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순국하였음. 이후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당시에도 원용팔 등이 주도하여 다시 의병을 일으켰으나, 일제의 우수한 화력과 군사력 앞에 많은 유생과 지사들이 체포되거나 사형을 당하는 탄압을 받았음.
일제의 탄압이 최고조에 달했던 사건은 정미의병 당시인 1907년 8월에 자행된 제천 초토화 작전임.

1907년 대한제국군 해산 이후, 제천을 무대로 이강년, 민긍호 등의 연합의병이 활약하며 제천 의병은 또다시 일본군과 맞섰음. 특히 1907년 8월 15일 제천 천남전투에서 의병이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는 성과를 이룩하기도 했음. 일본과의 첫 전투에서 승리한 제천 의병은 의림지 영호정에서 기쁨을 만끽했다고 함.
때문에 일제는 제천을 '의병의 근거지이자 비호 세력'으로 규정하고 무자비한 보복 작전에 돌입함.

1907년 8월 23일, 일본군 주력 부대(보병 제51연대 제2대대 등)가 제천에 진입했음. 이들은 의병을 색출한다는 명목 하에 제천 시가지와 민가, 관아 건물을 가리지 않고 도시 전체를 방화하여 완전히 불태웠음. 또한 의병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제천의 수많은 젊은이와 무고한 민간인, 노인, 여성, 어린이 포함을 가리지 않고 학살했음.

당시 한국을 취재 중이던 영국 데일리 메일의 기자이자 아시아특파원 프레더릭 아서 맥켄지(F. A. McKenzie)는 이 끔찍한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음.

"나는 말에서 내려 거리로 나가 잿더미 위를 걸었다. 일찍이 나는 이렇게 처참한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번화했던 거리가 지금은 시커먼 잿더미와 타다 남은 것들이 쌓여 있을 따름이었다. 완전한 벽 하나, 기둥 하나, 된장독 하나 남지 않았다."
이 조직적인 초토화로 인해 제천은 "지도에서 지워진 도시"가 되었으며, 이 여파로 오늘날에도 제천 시내에는 1900년대 이전 100년 이상 된 전통 목조 건축물이나 옛 민가가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음.
도시 전체가 불타버린 비극을 겪은 제천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내내 일제의 집중적인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천 주민들은 계속 일제에 저항했고 그에 따른 억압 역시 지속됨.

1919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3.1 만세운동의 열기는 제천에서도 뜨거웠음. 고종의 인산에 참여했던 제천 출신 독립운동가 이범우가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제천 장날이었던 4월 17일,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대규모 만세운동을 전개했음. 일제는 헌병과 경찰을 동원해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며 주동자들을 체포하고 가혹한 고문, 투옥을 가하며 탄압했음.
1920년대 이후에도 제천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동맹휴학투쟁과 제천청년회 등을 통한 청년 지사들의 항일 사회운동이 지속되었음. 일제는 치안유지법 등을 적용해 사소한 단체 활동이나 야학 운영까지 철저히 단속하고 탄압했음.

8월 15일은 제천 시민들에게는 광복절만이 아니라 일제에 저항하여 승리한 가장 위대한 전투 중 하나가 제천 이 고장에서 있었던 날이기도 함. 제천 주민들은 본인들의 위대한 업적을 전투가 있은지 38년이 지나고서야 드디어 온전히 되돌려 받을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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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XXXXX바이런거 볼때마다 그놈의 '총 한발 안쏴보고 병합된 나라 조선' 드립 생각나네 ㅅㅂㅋㅋㅋㅋ그거 진지하게 주장하는 사람들한테 본문 속 의병전쟁이나 남대문 전투 같은거 이야기하면 이거는 뭐가 부족하고 저거는 뭐가 안좋고 자꾸 지들만의 조건에 안맞는다고 난리를 침
- sXXXXXXk그런 새끼들은 제천이 어디에 붙어있는 지방인지도 모를 걸ㅋㅋㅋ
- 히XXXXX바'왕명에 의해 일본군과 간지나게 한타 붙어서 일본군도 꽤 많이 죽여가며 치열하게 싸웠지만 중과부적으로 어쩔 수 없이 스러져 간 대한제국군' 이라는 환상 속의 이미지만을 갈구하는 것 같달까
- sXXXXXXk애초에 정미의병 주 구성원들이 누군지 모르는 듯ㅋㅋㅋ
- 시XXX프차라리 그거면 낫지 그... 일본을 이상하게 좋아하는 ㄹ사람들도 그런말하지 않나여
- (XXX)애초에 한국이 저항했다는 사실 자체를 껄끄러워하는 사람들이라 ㅋㅋ
- SXXXXXs개소리지. 일제 당시 일제의 식민지중에서 그래도 생산성이 꽤나 있던곳이 우리나라였을건데,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사보타주 행위가 일어났다는건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일제의 전쟁역량에영향을 줬다는 소리임...이걸 인정 안한다는건 그냥 억까에 눈이 먼 놈들이지.
- 선XXXXX스생산성보다는 오히려 통치하는데 돈 많이 드는 나라였음 ㅋㅋ 그래서 초창기에 이거 우리 병합은 하지 맙시다 그랬다고 해도 나중에 하자
- 구XXX기전세계 식민지중에 흑자인 곳 별로 없었던거로 기억 그중 하나가 인도지금 각국 정부만해도 죄다 적자운영하는데 예전에는 기업이 운영하다가 파산하는게 부지기수 ㅋㅋ식민지면 그래도 그나마 나은데 내선일체 한답시고 일본인들 대량으로 보내고 기반시설 존나 지으니까적자가 안날래야 안날수가 없는 구조인게
- 선XXXXX스고건 맞음 그래서 조선태생의 일본인이라는 히키아게샤가 생겼던거지 여기서도 이방인 저기서도 이방인였던
- ㅈXXㅈ의병전쟁 사상자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2만, 최대 10만단위까지 가는 규모인데ㅋㅋㅋㅋㅋ
- 선XXXXX스총도 쐈어 그리고 ㅋㅋ
- lXXXXX2고종을 비롯한 상층부가 결국 나라를 판거지 백성들이 판게 아니였는데 말이지
- 윤XXXXX관난 개인적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냥 망했어야 했다고 봄 단지 일제가 아닌 백성들의 손에 의해 망했어야 했지당시의 의병 운동이나 이후의 독립운동을 보면 조선의 백성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용기와 의지는 충만했음 단지 그걸 국가적인 차원에서 끌어올릴 역량이 조선 왕조엔 없었다는게 문제였지나름의 노력은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판단으로 최악의 결과만을 불러왔던 국왕, 오직 가문의 권력 유지만을 꾀하며 부정부패를 일삼던 왕비와 외척들, 자신들의 보신책만 강구하다가 친일 매국노로 전락한 지배층까지..그래서 전면전 한번 제대로 못 치르고 무기력하게 망해버렸고 들불처럼 일어났던 의병들도 각개격파 당하고 만주로 뿔뿔이 흩어졌음 일부의 유림들을 제외한 다수의 독립 운동 세력이 국권 회복을 외쳤을지언정 왕정 복고는 외치지 않은건 다 이유가 있었던거임 당장 상해임시정부도 공화정을 지향했지해방 이후에 조선의 역대 임금들의 신주를 모신 종묘를 밀어버리고 국회의사당을 짓자는 얘기가 나온 것도 조선에 대한 반감이 컸기 때문임 조선의 무기력한 망국과 가열찼던 독립운동은 구분지어야 된다고 봄
- 숙X이남대문 전투가 궁금하신분들을 위한 글
- 추X자나치 독일의 리디체 학살 생각나네
- 올XX리쪽바리들은 나치급임 일뽕윈종이들은 어서 본국으로 돌아가라
- MXXXXXXR안받아준다ㅋㅋ
- 덥XX제가슴아프면서도 감사한 역사다..대한독립만세
- 홈XXXXXg이런글 볼때마다 독립운동 비웃는 원종이들 대가리 찍어버리고 싶음 얼마나 많은 희생 속에 지금이 존재하는데 개새끼들이 즈그 씹창난 인생 자위질하겠다고 입터는지
- 맛XX다덕분에 알아감. ㄱㅅㄱㅅ
- 진XXXXX키네오나치짓 하는 러시아 병신들을 보면....원종단도 그렇고 어디든 이해안가는 병신은 존재한다생각보다 흔하게
- 구XXX기제천이라 생각하면서 들어왔는데 제천 맞네
- 2XXXX2옛날엔 제천 충주 이쪽이 사람이 몰려드는 중심지였던데지금은 충북에서도 외곽이 됐지만
- 무XX자조선은 건국 당시부터 세계 10위권 중반 선진국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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