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중공군을 때려 잡을 방법을 찾아라!
전편: https://www.fmkorea.com/10207945831
미 육군 역사에서 가장 위급한 시점에서 가장 완벽하게 알맞는 인물을 찾으라면 단연 매슈 리지웨이가 꼽힐 거임. 그는 냉정하고 엄했지만, 신중하고 결코 몸을 사리지 않는 지휘관이었음. 낙동강 방어전의 공적으로 수훈십자장을 타고 나중에 전쟁사학자가 된 잭 머피는 이런 평을 남김.
"처음부터 리지웨이가 제8군 사령관이었다면 도쿄에서 8군을 쥐락펴락하지 않았을 것이며 청천강에서 패배를 겪거나 중공군의 공격으로 군이 와해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물론 중공군의 인해전술에도 충격을 받지 않았을지 모른다. 리지웨이라면 그곳 지형과 그에 따른 어려움이 무엇인지 충분히 파악하고 대처했을 것이며, 국경 너머까지 부대를 멀리 끌고 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의 양상이 확연히 달라졌을 것이고 중공군의 손에 꼭두각시 노릇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최고 실력을 갖춘 정찰 부대를 앞세웠을 것이며 지금보다 훨씬 일찍 실력 있는 군단장, 사단장 그리고 연대장들을 확보했을 것이다"
리지웨이가 북한군이 처음 38선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이것이 3차 세계대전의 전조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음. 그래서 부관을 시켜서 전 세계에 배치되어 있는 소련군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라는 지시를 따로 내릴정도 였음. 그는 상관에게도 일이 잘못되었다 싶으면 바로 직언을 할 정도로 용기 있는 사람이었음. 속으로는 불만을 가질지언정 맥아더에게 감히 직언을 하지 못한 워커와는 대비되는 부분임.
대표적인 예시이자 리지웨이에게 중요한 교훈이 되는 사건이 1943년에 이탈리아 전선에서 있었음.

연합군이 이탈리아 본토로 상륙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독일 몰래 단독으로 강화하기로 결정함. 이탈리아군 총사령관 피에트로 바돌리오 장군은 공수부대를 로마에 투입시키면, 같이 손을 잡고 독일군을 공격하겠다고 약속함. 이에 연합군 수뇌부는 크게 기뻐해서 투입될 부대로 리지웨이의 82공수사단을 선정함.
하지만 리지웨이는 불안했음. 바돌리오의 약속을 보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약속을 지켜도 로마에 주둔하고 있는 6개 사단으로 이루어진 막강한 독일군을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건지 납득이 되질 않았음. 리지웨이는 자신의 우려를 상관인 알렉산더 헤롤드 장군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에게 전달했지만, 당시 일개 사단장이었던 리지웨이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음. 그들은 5일만 버티면 연합군 주력이 공수사단과 연결될거라면서 호언장담함. 리지웨이는 가까스로 상부를 설득해서 부관 맥스웰 테일러(후일 101공수사단장이 됨)에게 로마로 잠입해서 독일군의 방어태세와 이탈리아군의 준비 상태를 정찰하라고 지시함.
그 결과는 암담했음. 독일군은 이상한 낌세를 눈치채고 2만명과 2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는 제3기갑척탄병사단을 연합군 공수부대가 강하할 만한 지역 인근에 배치된 상황이었음. 이탈리아군은 맞설 준비를 전혀하지 않았고, 이대로 작전을 진행하면 82공수사단은 전멸할께 뻔했음. 결국 모든 부대원이 배행기에 올라 엔진에 시동까지 걸고 있는 순간에 작전이 취소됨. 그날 밤 리지웨이는 자신이 상관이 두려워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으면 부하들이 다 죽을뻔 했다면서 눈물을 흘림. 참고로 연합군은 이탈리아에 상륙하고 로마에 도달하기 까지 7개월이 걸림. 5일만에 도달할 수 있다는건 완전히 허풍이었던것. 이 일을 계기로 리지웨이는 정보 수집을 중요성을 더욱더 절실히 깨달음.
역사학자 켄 햄버거는 군인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걸고 상관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평가함. 전쟁터에서 목숨걸고 싸우는 것만큼이나 큰 용기가 필요했던 행동이라면서 리지웨이를 극찬함.

리지웨이는 도쿄에서 맥아더를 만나고 한반도 군사 상황에서 이것 저것 물어봄. 맥아더는 중공군이 이렇게 강할줄 몰랐다면서 상황이 절망적이며 리지웨이에게 방심하지 말라고 조언함. 리지웨이는 이렇게 질문함.
리지웨이: 장군님, 제가 판단하기에 지금 바로 공격해야 한다고 말하면, 장군께서는 반대하시겠습니까?
맥아더: 매슈, 8군은 이제 자네거야. 그게 자네가 내린 결론이라면 그렇게 하면 되네.
이렇게 리지웨이는 패닉에 빠진 맥아더로부터 8군의 운용에 관한 전권을 받아냄. 리지웨이는 한국 시찰했고 매우 실망스러운 광경을 목격하게됨. 지휘관들은 패배주의로 물들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음. 적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은 양반이고 미 9군단장 콜터 소장은 군단 근처에 있는 강의 이름조차 몰랐었음. 지휘관이 근처 지형 이름조차 모르다니! 리지웨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음. 전임 워커 장군부터가 다 포기한 상황이었으니 밑의 장교들의 상황을 뻔했었음.
길가에 있는 고지대를 먼저 확보하지도 않았고, 인근 부대와 연락도 제대로 되지않았음. 지형을 파악해서 그걸 활용해서 작전을 계획해야 하는데, 미군과 국군 지휘관들은 후퇴할 생각에만 급급해 있었음.

무엇보다도 리지웨이는 부대들이 가지고 있는 지도 상태를 보고 분노했었음. 유엔군은 제대로 된 정찰도 하지 않은채 중공군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적군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었음. 리지웨이는 지휘관으로서 적의 위치와 전투력을 파악하지 않는 것만큼 심각한 죄는 없다고 생각함. 그는 중대급 부대까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부대를 점검하면서 이렇게 다그침.
"다들 이렇게 주저않아 있는 건 그저 몸이나 편해보자는 심산 아닌가? 빨리 나가서 적이 어디 있는지 찾아야지. 어떻게든 찾아내. 중공군의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란 말이야. 그래야 싸워서 몰살시킬 거 아닌가?"
리지웨이는 48시간 안에 중공군을 보았을 때만 붉은 깃발로 표시한다는 새로운 규칙을 공표해서 이런 난잡한 상황을 정리함. 그리고 능력없는 군단장, 사단장, 연대장들을 교체하면서 군기를 다시 잡음. 1월 중순에 로턴 콜린스 육군참모총장이 한반도를 다시 방문했을 때는 미 8군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음. 도쿄에서 완전이 넋이 나간 맥아더와 다르게 리지웨이는 자신감으로 가득차있었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서 굳은 의지를 보임. 이런 리지웨이의 태도는 미국 정부가 전쟁을 포기하지 않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함.
콜린스가 본 맥아더는 확전만이 답이라고 떠들어 대면서 아군의 정신력 나약하다면서 불만만 늘어놓는 노인으로 보였지만, 리지웨이는 중공군의 기세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미군의 저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리지웨이는 그런 태도로 부대를 이끌었고 상황 변화나 도움이 필요한 부대를 재빨리 파악하는데 능했었음. 절대로 후방에 편하게 늘어져 있지 않았고 항상 치열한 전방에 있었는데, 어느 정도였다면 조지 패튼이 너무 위험하다면서 리지웨이를 만류했을 정도였음.
그는 이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정찰을 했는데 사관생도 1학년 시절 750명이나 되는 동기들의 이름을 전부 외울정도로 머리가 좋았던 리지웨이는 미군이 작전을 벌여야 되는 지형을 정확히 익히고 알맞게 작전을 짰음.

또한 리지웨이는 중국군의 약점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음. 유엔군에서는 신출귀몰한 중공군을 유령 군대라고 부르면서 두려워했지만, 리지웨이는 달랐음. 이 세상에 약점이 없는 군대는 없기 때문에 반드시 약점이 있을거라고 봤음. 그리고 3차례 공세를 겪으면서 뭔가 이상한 패턴을 발견함.
10월 말부터 중공군이 1달 간격으로 공격을 해오는데, 공세한지 7일이 지나면 중공군이 사라진다. 왜지? 더 밀어붙이면 아군에게 더 큰 타격을 가할 수 있을텐데....
리지웨이는 마침내 결론을 내림. 중공군이 공세를 최대로 지속할 수 있는 기간은 7일이며 다음 공세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1달이나 걸린다. 따라서 유엔군이 7일동안 중공군의 공세를 버티고 1달이 지나기 전에 반격하면 승산이 있다. 유엔군 사령부가 패닉에 빠져있을 때 리지웨이는 어떻게 싸워야할지를 1달도 안되서 찾아낸거임.
리지웨이는 중공군 3차 공세가 끝난지 1주일이 지나자, 다부동 전투에서 활약한 제27연대 '울프하운드'의 지휘관 마이클리스 대령에게 수원 방면으로 위력수색을 명령함.
리지웨이의 공세 계획은 간단했음. 정글 원주민들이 뱀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지팡이로 풀숲을 두드리면서 나아가는 것처럼, 잘 무장된 연대를 먼저 보내서 중공군의 반응을 확인하고 저항이 거세면 사단이 합세해서 그 지역의 중공군을 밀어버리는 작전을 구상함. 이렇게 그 지역 일대에 중공군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하고 공세를 가하자 중공군은 별다른 힘을 못쓰고 2월 초에 한강 이남을 전부 빼앗겨 버림. 이때 중공군 50군은 33,000명 중에서 남은 인원이 10,300명 밖에 안 남을 정도로 대타격을 받음.

중공군 사령원 펑더화이는 유엔군이 생각보다 빨리 반격하자 당황하게 됨. 하지만 곧 냉정을 되찾고 반격을 준비하게 되는데 이게 중공군 4차 공세임.
중공군 수뇌부가 보기에 서부전선에서 밀고오는 유엔군은 너무 막강해서 전면에서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함. 그래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동부 전선에서 공세를 해서 유엔군을 후퇴시키기로 결정함. 여기서 주 공세를 어디서 펼쳐질 건지를 두고 격렬하게 충돌하는데 2가지 후보지가 있었음. 하나는 미군이 지키는 지평리였고, 다른 하나는 국군이 지키는 횡성이었음.
(다음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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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XXX맇여기서도 이탈리아의 트롤링이 나올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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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X루조상(로마제국)에 비해 트롤링만 자행하는 후손 ㅋㅋ같은 라틴족 맞나? 의심들음
- 땡X이딸? 이딸?
- 알XXXXX홀이탈리아의 공격은
- 이X율프랑스의 산악사단에 막힙니다
- 땡Xㅎㅅㅎ
- 평XX놈ㅊㅊ
- 너XXXXX사문단이 길수록 글씨크기 작은게 더 읽기 좋은듯 해요 ㅊㅊ
- RXXXXXXl그래요? 글씨 큰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 너XXXXX사이건 제 개인의견이라 다른 분들께 더 의견 받는게 나을듯요모바일은 작은게 좋고 pc는 큰게 좋을거 같아서요
- 포XXXX교중간에 역사학자이름이 햄부기? ㄷㄷ
- RXXXXXXl조상이 독일 출신인듯...
- 리XXX터여러 번 느끼는 사실이지만처음부터 UN군사령관:리지웨이8군 사령관:밴플리트로 가야 했음
- RXXXXXXl콜디스트 윈터에서도 나오는데 만약 워성턴에서 유엔군 사령관은 지목할수 있었다면 그건 맥아더가 아니라 리지웨이였을거라고
- 리XXX터맥아더는 일본 지배자로 남겨 둬야 했는데뭐에 꽂혀서 UN군 사령관까지 겸하게 했는지
- RXXXXXXl그때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이 극동사령부 전력이었는데(이 사령부 인원들이 유엔군 사령부를 그대로 겸직함), 그 수장이 맥아더여서 방법이 없었음. 그나마 그 지역에 빠삭한게 맥아더니깐 그대로 유임시켰는데, 중공군한테 털릴줄 몰랐던거지
- 카X8콜디스트 윈터!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 게XXXX지결과는 암담했음. 독일군은 이상한 낌세를 눈치채고 2만명과 2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는 제3기갑척탄병사단을 연합군 공수부대가 강하할 만한 지역 인근에 배치된 상황이었음. 맞설 준비를 전혀하지 않았고, 이대로 작전을 진행하면 82공수사단은 전멸할께 뻔했음. 결국 모든 부대원이 배행기에 올라 엔진에 시동까지 걸고 있는 순간에 작전이 취소됨. 그날 밤 리지웨이는 자신이 상관이 두려워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으면 부하들이 다 죽을뻔 했다면서 눈물을 흘림.정찰 결과로 독일군의 배치을 알았고 이를 기반으로 취소한건가요?
- RXXXXXXl맥스웰 테일러가 가보니깐 이탈리아군 준비가 아예 안돼 있었고 로마에 배치된 독일군이 너무 강력해서 이거 가면 좆됀다고 긴급하게 비밀 무전 때려서 막음. 당시 공수사단이 가지고 있던 최대 화력이 75mm 경량포가 전부라서 독일 기갑부대를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음. 만약했으면 마켓가든작전 당시 영국군 1공수사단 처럼 궤멸당했을 거임
- UXXX0ㅊ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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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XXXXX스아...횡성.....참 지나고 나서 보면 진짜 아쉬운 순간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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