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향으로 보는 중세 이야기
1. 중세에 서기관은 생각보다 엄청난 권력을 가진 직업이었다.
5권에서 등장하는 이 아저씨가 무슨 돈이 있어서 집에 화원을 꾸밀 수 있느냐 하면, 이 아저씨의 직업인 도시 서기관의 힘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기 때문임.
중세엔 글을 못 읽는 사람이 절대다수고, 심지어 귀족 중에서도 못 읽는 사람들이 많았음.
공작이나 왕들, 잘 나가는 백작 같은 최상위 귀족들이야 필수 교양으로 글을 익혔지만 그 밑의 귀족들은 그냥 까막눈인 경우가 비일비재했음.
기본적으로 중세 귀족들은 전사 계층이라 글을 익히는 걸 전사답지 못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어느 정도는 있었고.
그때 필요한 게 이 아저씨와 같은 글을 배운 서기관이었음.
그럼 남들이 한 말을 받아 적기나 하는 서기관들이 왜 엄청난 권한을 가졌느냐?
세금을 냈는지, 안 냈는지, 빌린 돈을 갚았는지, 안 갚았는지, 어떤 법이 정해지고, 취소되었는지,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이 땅의 주인은 누군지 등등...
중요한 일들을 전부 서기관들이 기록하는 거임.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모든 인간은 글을 읽을 줄 모르고.
그 말은 곧 중세의 서기관은 영화 속에서 나오는 무적의 해커나 다름없었다는 소리임.
나랑 사이가 안 좋은 녀석이다? 세금을 기록할 때 슬쩍 그 녀석 것만 빠뜨리는 거임.
그럼 그 녀석은 세금을 냈는데도 세금을 안 낸 상태가 되어서 세금을 또 내야 됨.
평소에 벼르고 있던 놈이다? 그럼 그 놈이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해 고소장을 접수하려고 해도 슬쩍 고소장을 빼먹는 거임.
그럼 그 놈은 3개월이나 법정에서 답이 돌아 오질 않아서 다시 찾아오게 됨.
그때 '아이고, 이런. 님 고소장이 사라졌네요? 아쉽지만 3개월 더 기다리시죠. 고소장을 지금부터 새로 넣어야 해서요.'
ㅇㅈㄹ하며 무한 기다림 지옥에 처넣어줄 수 있음.
영주가 마음에 안 드는 법을 만들려고 한다?
이 문장을 수정해야 하고, 저 표현은 적절치 않고 온갖 핑계를 대면서 법의 공식 문서화를 늦출 수 있음.
언제까지? 영주가 그 법을 까먹을 때까지.
재판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를 결정하는 것도 서기관이었음.
물론 재판을 진행하는 건 영주거나, 왕의 판관이었지만 서기관은 충분히 결과를 뒤바꿀 힘이 있었음.
중세에는 온갖 특허장이 있었음. 오늘날의 특허가 아니라,
이 사람은 무역 관세를 안 내도 되는 특권이 있다, 이 사람은 이 길목에서 통행세를 거둘 특권이 있다, 이 사람은 시장을 열 특권이 있다, 이 강에선 이 사람만 뱃사공을 할 특권이 있다 등등
온갖 특권을 기록한 서류가 바로 특허장임.
그런데 중세엔 정교한 행정 시스템도 없고, 특허장도 남발되다 보니 때론 하나의 길목에 통행세 특허장이 두 사람에게 동시에 발행되는 경우도 있었음.
그럴 경우 두 사람은 서로 내가 통행세를 거둘 권리가 있다며 재판으로 넘어갔는데,
재판에선 먼저 받은 특허장이 인정받고 나중에 받은 특허장이 무효 처리되었음.
그리고 서기관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특허장을 작성할 땐 '2026년 8월 22일에 발행됨' 이라고 솔직하게 적는 게 아니라 슬쩍 '2026년 6월 22일에 발행됨'이라고 적을 수도 있었음.
그럼 2026년 7월에 특허장을 받은 반대쪽 사람은 원래라면 이겼을 재판에서 서기관의 술수로 패소하게 되는 거임.
서기관의 사소한 조작만으로 누가 승소하고 누가 패소할지를 바꿀 수 있는 거지.
심지어는 영주나 국왕의 외교에까지 간섭할 수 있는 게 서기관이었음.
예를 들어 프랑스왕이 영국왕과 동맹을 맺으려고 하는데 서기관이 그 동맹을 원치 않으면
일부러 외교에서 실례가 되는 표현,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어 등을 섞어서 공식 문서를 꾸미는 거임.
당연히 영국왕은 그런 표현이 잔뜩 들어간 편지를 받곤 빡쳐서 동맹을 거절할 테고.
당대에 글을 안다는 건 무시무시한 권력이었고, 그 권력은 전부 돈으로 치환될 수 있었음.
내 고소장을 빠르게 접수하고 싶다면 서기관에게 은화 한 닢 슬쩍 찔러 넣어줘야 했고,
평소에 빵 한 바구니라도 선물하며 관계를 다져놔야 세금을 두 번 내는 일을 피할 수 있었음.
이 아재가 식물 키우기 덕질이나 하면서도 번듯한 집에 화원을 갖출 수 있던 이유는 바로 이런 배경이 있어서임.
2. 소금 밀수가 돈이 됨? ㅈㄴ 됨.
에이브 볼란은 교회와 손을 잡고 소금 밀수를 하며 돈을 벌었다고 하잖아.
이건 당대 최고의 수익을 올리던 사업이었음. 중세의 소금과 오늘날의 소금은 가치가 달랐음.
소금을 안 먹으면 사람이 죽으니까 필요하다? 그런 수준의 이야기가 아님.
옛날 사람들은 현대의 사람들보다 소금 소비량이 훨씬 많은데 그건 다른 향신료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식량 보존에 소금이 필수품이었기 때문임.
통조림을 만드는 기술도, 냉장고를 만들 기술도 없던 세상에서 소금은 식량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음.
물고기든, 돼지 고기든, 소고기든, 닭고기든 잡자마자 소금을 엄청나게 뿌려 염장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엄청나게 소금이 소모되었음.
사람들이 소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고대 국가들은 소금에 세금을 물리는 게 일상이었음.
동방에선 한나라가 전매제라고 해서 소금을 나라에서만 독점해 팔았고, 서방에선 프랑스가 가벨이라고 하는 소금 세금을 물려 소금을 팔았음.
심지어는 제국주의 시대까지도 이 소금세는 이어져 영국은 인도에서 소금세로 엄청난 돈을 벌었음.
오죽하면 프랑스에서 프랑스 대혁명이 터진 것도, 인도에서 간디의 독립 운동이 전국으로 번진 것도 가혹한 소금세가 주요 원인 중 하나일 정도였음.
때문에 중세 사람들은 소금세로 엄청나게 비싸진 소금을 엄청나게 많이 사들여야 했음.
그런데 밀수라면 바로 그 소금세를 안 내도 됐기 때문에 시장가보다 훨씬 싸게 팔아도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었고,
자연스레 당대의 소금 밀수는 돈을 갈퀴로 쓸어 담을 수 있는 사업이 되었음.
3. 일각 고래 뿔은 당대 제일 가치 있는 상품 중 하나였다.
7-8권의 이야기 소재가 되는 일각 고래는 중세에 엄청난 가치를 지닌 상품이었음.
정확히는 그 뿔이 엄청난 가치를 지녔음.
중세 사람들은 바다 속엔 땅의 생물에 대응되는 동물이 산다고 믿었음.
땅에 돼지도 살고, 소도 살고, 닭도 사니까 바다 속엔 바다 돼지, 바다 소, 바다 닭도 있겠지 하고 상상한 거임.
그래서 바다에서 나온 일각 고래의 뿔은 바다 유니콘의 뿔이라고 여겨졌음.
유니콘의 뿔엔 모든 독을 해독하고,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고 그건 바다 유니콘의 뿔(실제론 일각 고래의 뿔이지만)도 마찬가지로 생각되었음.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그 유명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일화가 있음.
늑향에서의 일과 똑같이 북해에 사는 일각 고래 한 마리가 영국 해안까지 떠밀려 오는 일이 생긴 거임.
그러자 해당 지역의 영주는 바로 일각 고래의 뿔을 여왕에게 바쳤고, 여왕은 그 뿔을 무려 1만 파운드에 구매했음.
참고로 1만 파운드는 당대에 15000 마르크와 같은 값어치였는데 스웨덴 왕은 한때 오늘날의 핀란드 영토 전체(당시엔 스웨덴 땅이었음)를 2만 마르크에 저당 잡히기도 했음.
즉 일각 고래 뿔 하나를 사는 데에 핀란드 영토 전체의 75%를 사버릴 수 있는 돈을 쓴 거임.
이 정도면 케르베의 상인들이 왜 일각 고래 한 마리에 눈이 뒤집혔는지 알 수 있을 거임.
4. 당시의 핫 플레이스는 다리 위였다.
1권에서 이 환전상이 다리 위에 좌판을 깔고 있는 걸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음?
오늘날로 치면 은행이 마포대교 위에 지점을 만든 꼴이잖아.
그런데 당시에 이런 일은 아주 자연스럽고 흔한 일이었음.
오히려 당대의 다리들이 수입을 거두는 주된 방식이 바로 이런 좌판들에게 자리세를 받는 거였음.
일반적으로 다리로 돈을 벌 거면 통행세를 받겠지 하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중세에 다리 통행세는 받기 어려웠음.
통행세를 받기는 했는데 완공한 직후부터 20년 동안만 받는다, 이런 식으로 통행세를 거둘 수 있는 기간이 법으로 정해져 있었음.
그 이후로는 당연히 무료 이용이었고.
그리고 법에서 정한 기간은 보통 딱 그 다리를 짓는 데에 드는 비용만 회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음.
때문에 다리 주인들은 다리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에 드는 돈을 전부 다리에서 장사하고 환전하는 애들한테서 자리세를 받아 해결했음.
그 자리세로 유지 보수하는 비용을 전부 처리하고도 엄청난 돈을 벌어다 주는 다리도 있었고.
당대의 다리는 강을 넘는 통로임과 동시에 사람들이 모이는 백화점과 같은 공간이었음.
강을 넘으려는 사람들은 무조건 지나야 하는 곳이니까 고객들이 모일 수밖에 없는 입지였고, 그걸 노리고 온갖 상인들이 몰려든 거임.
그렇게 상인들이 모여드니 고객들이 더 모여들었고, 고객들이 더 모이니 상인들은 더더욱 몰려들 수밖에 없었음.
그러니 중세의 사람들이 쇼핑하러, 혹은 환전하러 도시의 다리로 가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음.
다리 위가 도시의 최고 핫플이었으니까.
+ 한 가지 덧붙이자면 당대 환전상들은 늑향에서 나오듯 나무 좌판 하나만 딱 깔고 장사를 했음.
이때 사용하는 기다란 나무 탁자를 반코(Banco)라고 불렀는데 환전상들의 이 반코에서 시작되어 은행을 뜻하는 영단어인 뱅크(Bank)가 나온 거임.
그리고 환전상들이 환전 사기를 치다가 걸리면 도시 경비병들이 몽둥이를 들고 와서 반코를 깨부숴 버렸는데,
이때 부서진 탁자를 뜻하는 단어인 Banco Rotto에서 파산을 뜻하는 영단어인 Bankrupt가 나온 거임.
5. 중세에도 요이츠와 같은 유명한 온천 도시들이 있었다.
늑향의 배경적 모델이 된 중세 독일에는 특히 온천 도시들이 많았음.
중세에 독일은 광업이 엄청 발달했는데, 로마 땅이었던 다른 나라들, 예를 들어 스페인 같은 경우엔 이미 로마 놈들이 광물을 싹 다 캐버린 반면,
로마에게 지배당하지 않은 게르만의 땅이었던 독일은 상대적 미개발지로 남아 중세에 와서야 본격적인 광맥 탐사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임.
그렇게 땅을 파헤치다 보니 자연스레 온천수가 쏟아져 나왔고, 그렇지 않아도 광질하느라 지친 광부들이 온천수로 몸을 회복하며 유명한 온천 마을들이 생겼음.
그중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직접 건설한 온천 마을까지 있었음.
일화에 따르면 몸을 다친 자신의 사냥개가 온천을 찾아 거기에 몸을 담궈 치료하는 걸 본 황제가 감탄하며 직접 온천을 세웠다고 함.
황제가 직접 세우고 보증한 온천이다 보니 중세 내내 고위 귀족들과 왕족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 온천으로 성장했고.
결론
역시 늑향은 훌륭한 중세 고증의 갓작이다. + 곧 나오는 늑향 애니 2기 많관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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